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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3〉
Fun in The Alps 〈3〉
  • 의사신문
  • 승인 2012.08.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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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결국 인연을 못 맺은 마터호른…애써 위안하며 하산

서윤석 고문
■7월17일

어제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날씨는 맑으나 바람이 분다. 배낭을 꾸려 케이블카역으로 향한다. Breithorn을 오르려면 일단 Matterhorn glacier paradise행(Klein Matterhorn 3883m) Cable-car를 타서 종점에서 내려야 한다. 역앞에 스키어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다. 전광판에 정상의 풍속이 시속 54km로 표시되어 있다. 바람 때문에 스키장이 폐쇄되어 못 오르고 있지만 등산객에게는 표를 팔고 있었다. 이 Cable은 Klein Matterhorn의 정상부위에 역을 만들어 남북으로 터넬(약140m)을 뚫어 남쪽 출입구로 나가게 만들어 놓았다. 나가면 바로 너른 설원이 펼쳐지고 스키장으로 연결된다. 단숨에 고도를 2000m이상 올리니 귀가 먹먹하다. 5년전 샤모니의 에귀디미디에서 케이블카로 하산중 귀의 이석(耳石)이 움직여 반나절을 어지러움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던 생각에 바짝 긴장한다. 권대장과 안자일렌을 하고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사막같은 설원을 가로질러 좌측으로 꺽으니 눈앞에 Breithorn(4164m)이 나타난다. 바람으로 눈보라가 일어 정상부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마치 한라산같이 지그재그로 올라 좌측 능선을 타고 정상부위로 향하게 되어있다.

◇체르마트에서 본 브라이트호른. 우측에 Klein Matterhorn이 보인다.
브라이트호른(4164m) 즉 `브로드피크(Broad Peak)'란 뜻의 이봉우리는 말 그대로 4000m대 능선의 길이가 2.5km나 된다. 하여 이 긴 능선에는 국제산악연맹이 인정한 4000m급 봉우리가 5개나 솟아 있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이 긴 능선을 두고 북쪽은 가파른 암벽과 빙설벽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설사면과 빙하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4164m의 주봉은 능선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중앙봉(Central Summit·4159m)과 웨스트 트윈(West Twin·4139m), 이스트 트윈(East Twin·4106m) 그리고 로치아네라(Roccia Nera·4075m)가 차례로 있다.

심한 바람으로 정상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어 피켈을 눈밭에 박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몇걸음 움직이는 고난의 연속이다. 바람이 북서쪽에서 불어오니 등으로 바람을 막으며 좌측으로 한발 한발 떼려니 흡사 게가 언덕을 오르는 것 같다. 바람이 잦아 허리를 펴려던 순간 겉에 쓴 털모자가 휙- 날아간다. 머리에 바람마개를 쓰고 그 위에 털모자를 푹 뒤집어 썼는데.. 아깝다. 이태리 쪽으로 멀리 던져진 모양이다. 보이지도 않는다. 권대장이 빨리 움직이라고 파이팅을 외친다. 그래 가야지. 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 않고 가파른 능선길이 계속되니 숨이 턱에 찬다. 흔히 이야기하는 깔딱고개다. 한라산 성판악을 통해 정상에 오를때 처럼 이 산도 8부 능선에서 치고 오른다. 정상부의 능선에 오르자 좌측편은 천길 낭떠러지로 설벽이 가파르게 서 있고 정상이 저멀리 보인다. 양손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것으로 보아 정상인 모양이다. 현지 가이드들의 인솔아래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산행팀들이 정상 인증샷을 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우리네 산같이 `대청봉, 천황봉’ 같은 표지석도 없이 밋밋한 정상에서 환호하려니 멋적기도 하다. 마터호른 정상의 `수도사 St. Bernard’ 동상 앞에서 찍으려고 준비한 페넌트를 들고 멋진 인증샷을 찍었다.

`100th Anniversary 2015 서울시의사회-서울시의사산악회'. 서편의 마터호른이 점잖게 서있다. 구름이 잦아진채 온몸을 드러내 놓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자네와는 인연이 없네... 애써 위안을 해보지만 씁슬한 입맛은 시원히 가시지 않는다. 하산이다.


2000m를 단숨에 케이블카로 오르니 설원의 끝에 브라이트호른 보여
심한 바람 뚫고 정상 올랐지만 멀리 보이는 마터호른 위용에 씁쓸
알펜로즈서 작년 등반팀 조창권 회장 재회 에귀디미디 등반 다짐


막차가 오후 3시까지이니 서둘러야 한다. 직선의 정상 능선길을 내려 지그재그로 이어진 하산길을 재촉한다. 가끔은 크레바스에 빠질 수 있으므로 발자욱이 난 길만 골라 한발한발 내 딛는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서울시 회원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설산을 발견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어 마음 한편으로 위안이 된다. 이제 드넓은 설원 입구에 도달했다. 약 5시간의 산행에 녹초가 되었다. 이제 반대편에서 오르는 팀들은 설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모양이다. 터널 입구에서 장비를 정리하고는 슈바르츠제행 케이불카에 몸을 싣는다. 우측에는 할머니 얼굴처럼 짙게 주름진 빙하지대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으로는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직할강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시 슈바르츠제에서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체르마트로 내려간다. 푸른 언덕에 핀 야생화들, 여기저기 아름답게 치장한 샬레의 모습이 전형적인 알프스의 마을 풍경이다.

로프웨이 승강장에서 내려 마을을 관통하는 마터비스파(Mattervispa)강을 건너 마을 중심가로 들어 서는데 스위스전통 양치기 복장을 한 소년,소녀들이 백여마리의 양을 몰으며 마을위 산양 우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의 볼거리로 치장한 마을 주민들의 지혜가 옅보인다. 그런데 배설물을 치우는 사람이 없으니 온거리가 지저분한데 아무도 관심도 없다. 오직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저멀리 브라이트호른 정상이 보인다.
■7월18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청명하고 맑다. 그리고 건조하여 티셔츠를 며칠 입어도 냄새가 없다. 체르마트에서 등산 열차나 케이블카로 갈수있는 곳은 모두 7곳이 된다. 이것을 모두 타보고 관광해도 4∼5일은 잡아야 한다. 오늘은 3103m의 로트호른(Rothorn)에 지하식 케이블카 및 케이블카로 올라 정상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보고는 중간기착지인 Blauherd(2571m)까지 내려온후 여기부터 체르마트(1640m)까지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이역은 밖에서 보면 전혀 케이블역같지 않게 조용하나 슈네가역(Sunnegga, 2288m)역까지 지하터넬로 가파른 경사를 힘들이지 않고 올라간다. 일단 케이블을 바꿔타고 정상의 로트호른까지 오른다. 이곳에서 보는 마터호른은 또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엄한 할아버지 같다가도 조금만 멀어져도 정많은 할머니처럼 보이니 이런 마터의 매력 때문에 체르마트는 날로 번창하고 있나보다. 정상의 주위는 풀한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함으로 쓸쓸해 보이나 많은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대부분의 유럽관광객 중 아시아인이라면 일본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떼를 지어 다닌다. 가끔 중국인이 보이고 고국 사람은 아주 드물게 보인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50대 후반으로 조심스럽고 안내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전형적인 니혼진(日本人)의 모습이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Blauherd로 내려가 밖으로 나온다. 저아래 슈네가 전망대 좌측에 있는 짙푸른 라이 호수(Lei-see)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이 호수의 표면은 거울과 같아서 바람이 없는 맑은 날에는 거꾸로 비친 마터호른의 멋진 모습을 볼수 있다. 자주 달력에 등장하는 사진이 내 발밑에 보이고 있다. 우리는 좌측의 꼬불꼬불 이어진 트레킹 코스를 이용해 천천히 하산을 시작한다. 아름다운 야생화 밭 사이로 이어진 등산길은 한폭의 그림이다. 어디든 샤터를 눌러도 멋진 그림이 나오니 낙원이 따로 없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소개된 알프스의 모습처럼 각양각색의 야생화 군락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이곳에서 `에델바이스'는 가정집 앞마당에서 키울 정도로 흔하고 모든 문양에 꽃모양이 인쇄되지만 설악이 토종인 `산솜달이'가 더 정겨웁다. 귀해서일까? 이곳에서는 수목 한계선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표지판을 설치하여 놓았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브라이트호른 정상에서.
산속에 그림처럼 지어논 식당들이 보이고 아름드리 나무가 더위를 식혀준다. 바위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물을 끓여 라면 과 빵 등 점심을 해치운다. 산속에서는 소화도 잘되는지 허기가 바로바로 진다. 산등성이의 주택가를 거쳐 시내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알프스의 정경에 취해 너무 지체한 느낌이다. 스케줄상 오늘 다시 샤모니-몽블랑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호텔에 들려 짐을 정리하고는 바로 테슈행 열차를 타고 이동한다. 테슈역 주차장에 주차시켜 둔 차로 마터계곡을 내려 간다. 주차비가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다. 사실 이곳은 샤모니보다 모든 면에서 비싸고 사람들도 곱상하지 않다. 워낙 오지의 추운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좀 찬 느낌이 들고 같은 EU국가이면서도 유로를 통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워낙 국민소득이 높아 콧대가 쎈 건지는 모르겠다만 정이 안간다. 그래도 내가 아쉬우니 어쩌겠는가? 한가한 고속도로를 달려 마르티니를 넘어 샤모니-몽블랑으로 향한다. 샤모니에 도착후 저녁은 호텔앞 식당에서 오랜만에 그릴에 구운 고기로 포식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식당겸 산장인 알펜로즈(Alpen Rose)에 들러 작년 마터호른 등반팀의 조창권 회장을 재회하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작년 등반팀 10여명중 셋이서 만났으니 작년 마터호른 못오른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몰랐다. 이래서 산에서 만난 친구는 정이 많이 가는 모양이다. 이곳은 몽블랑 전진기지로 사용될 만큼 한국산악인들에겐 친숙한곳이 되었다. 파리유학생 출신의 조문행 사장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한인사회의 복덕방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날도 조 사장의 십팔번인 샹송 `고엽'을 들으며 브라보를 외쳤다. 또한 서울에서 온 서울대교수 산악회의 오종환 교수를 만나 내일 에귀디미디에 올라 코스믹릿지를 같이 등반하자고 약속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서윤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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