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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기능 연구의 개척자 - 국영종 
신장기능 연구의 개척자 - 국영종 
  • 의사신문
  • 승인 2012.08.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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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학회 창립 및 국내 약리학 발전·선진화 기여

국영종(鞠永棕)
서봉(瑞峰) 국영종(鞠永棕)은 1930년 의사 국순홍(鞠淳弘, 1925년 경성의전 졸업)과 최명순(崔明順)의 2남 7녀 중 차남으로 목포에서 선친이 봉직하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병원인 부란취(French)병원에서 태어났다. 1947년 광주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53년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제1회로 졸업하였다. 당시는 한국전쟁 중이어서 졸업과 동시에 전원이 군의관으로 임관되었다. 이때 5명을 선발하여 학교요원으로 배정하였는데 국영종은 약리학교실에 배속되어 조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1955년부터 강단에 섰으며 1956년에 전임강사로 임명되었다. 1957년 재소집되어 1년간 군의관으로 복무 후, 1959년에 독일 훔볼트재단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라이부르크대학 약리학교실에서 신장기능 연구에 종사하여 많은 업적을 내었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귀국하여 모교의 약리학교실에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귀국 후 Oxytocin의 대사작용 연구 결과를 1964년 한국 최초로 학술지 `Nature'에 게재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너무나 열악한 연구여건은 그의 발길을 다시 외국으로 돌리게 하여 1966년에는 1년간 IAEA장학생으로, 1972∼73년에는 미국 NIH 지원으로 로체스터대학에서, 1975년에는 독일 아헨(Aachen) 대학(훔볼트재단 지원)에서 신장기능 연구에 몰두하였다.

1979년에는 전남의대 학장에 임명되었고,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회장을 맡아 의학교육개혁에 진력하였으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한편 전남대학교 의과학연구소 소장을 맡아 4년간 대학의 연구역량 강화에 노력하였다. 그 후 1988년에 전남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96년에 정년퇴임하였다.

선생은 적극적인 학술활동으로 대한약리학회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전남의대잡지(1964)와 대한약리학잡지(1965)의 창간에 이바지 하였다. 1980년에는 대한신장학회 창립에 공헌하였고 1988년에는 그 회장을 맡았으며 호남신장학회를 창립하였다. 1979년에는 대한약리학회 회장으로서 학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제약리학회(IUPHAR) 정회원 가입을 성공시켰고 한국 Executive Officer로서 대한약리학회를 대표하여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또한 일본과의 학술교류를 위하여 1982년에 한일약리학 세미나를 시작하여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외국어에 능통하여 후학들의 논문작성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1988년에는 영문학술지 `Chonnam Journal of Medical Sciences'를 창간하여 10년간 편집과 교정에 심혈을 기울였고, 지금도 대학원에서 영어논문작성법을 지도하고 있다. 선생은 60여 편의 학술논문을 국내외 여러 학술지에 발표하였고, 저서로는 `신장학'을, 역서로 `고오스 약리학'을 발간하였다. 또 많은 후학들을 지도하여 백여 편의 지도논문을 발표하였고 80여명의 박사를 배출하였다. 1990년에는 금호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전남의대와 대한약리학회의 산증인으로서 `전남의대 50년사'(1994)와 `대한약리학회 50년사'(1997)를 편찬하였다. 1996에 정년퇴임하여 국민훈장모란장을 수훈하였으며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선생은 한국의 신장기능연구의 개척자로서 근위세뇨관에서의 citrate분비를 입증한 그의 업적은 `Handbook of Physiology'에 소개된 바 있다. 선생은 외유내강의 성격을 지녔으며, 열정적인 연구자로서 실험실에서 제자들에게는 자상하고 친절하지만 엄격하고 정확한 관찰을 요구하였다. 그는 1974년 당시에는 전무하던 연구비를 `스스로 도와' 마련하고자 몇몇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연구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에는 큰 발전기금이 조성되어 모교 교수들의 연구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늘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하며, 창의성과 뚝심을 강조하였다. 또 인화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특히 공은 남에게 돌리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숨은 초석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또 몸소 실천하였다.

또한 그는 전남의대 제1회 졸업생을 대표하여 모든 졸업기념 행사와 모교 지원사업의 전통을 세워나갔으며, 2003년에 졸업 50주년을 맞아 `서봉의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가장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전남의대 교원을 표창하고 있다. 그 외에 2009년에는 서봉학술진흥재단을 설립하여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선생은 음악을 특히 좋아하여 재학 시 의대합창단을 이끌었으며 그 후로도 계속 지원하여 전남의대음악회의 오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집필 : 김경근(전남의대 약리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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