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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2〉
Fun in The Alps 〈2〉
  • 의사신문
  • 승인 2012.08.1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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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청명한 날씨 속 세찬 바람…말 없이 서있는 마터호른

서윤석 고문
■7월15일 - 오늘은 아침을 일찍 먹고 Zermatt로 출발이다. 도착해서는 바로 마터호른 전진 기지인 회른리산장(Hornlihutte 3260m)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샤모니-몽블랑(프랑스)에서 국경을 넘어 마르티니(Martigny-스위스)로 가는 길은 설악의 한계령을 넘듯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올라 급경사 길을 내려가야 한다. 안개가 자욱히 낀 길을 꼬불꼬불 올라가자니 영낙없는 한계령이다. `아-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양희은의 노래가 귓전을 때린다. 내가 떠도는 구름인가? 차라리 떠도는 구름이면 이곳 저곳 멋진 산이나 올랐으면 좋으련만…

◇회른리 산장으로 향하는 권 대장과 필자
산을 깍아 계단식으로 조성한 포도밭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하행길이 펼쳐져 있다. 마르티니부터는 시옹(sion)을 거쳐 평탄한 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을 벌써 5번째 가고 오고 했으니 길이 눈에 선하다. 지금 이곳에선 살구(Abricot-Apricot)가 한창으로 길가에 간이가게가 많이 서있어 새콤달콤한 살구맛을 오랫만에 즐겨본다. 미루나무가 죽 늘어선 시원한 길을 따라 가다 2시간여만에 비스프(Visp)에서 우회전하면 마터계곡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부터 또 한계령길을 올라가듯 태쉬(Tasch)까지 가게 되는데 모든 자동차는 여기서 더 이상 갈수가 없다. 태쉬에서 체르마트까지는 길도 험하지만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오직 전기열차만 이용할수 있다. 넓은 태쉬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전철로 갈아 탄다. 최근 건설한 경기도 용인의 경전철이 타당성 때문에 운행도 못한다는데 이곳처럼 설악으로 옮겨다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운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서 걱정을 해본다.

번잡한 체르마트 역 앞마당에서는 말이 끄는 마차와 전기밧데리로 움직이는 경차가 부지런히 손님을 나른다. 역앞 산악용품점에서 Climbing Boots와 Pickel을 빌려 마을 중앙통로를 지나 케이블카역으로 향한다.

이곳 체르마트도 동서로 길게 뻗은 산맥의 계곡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로 중심가는 호텔과 음식점, 스포츠용품점들이 주를 이루며 산악박물관, 산악가이드 사무소등이 있다. 모든 호텔들은 테라스에 예쁜 꽃들로 외관을 장식하여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답다.

◇마터호른 등반 중.
마을 중심을 흐르는 회색의 내(川)를 건너 바로 Schwarzsee(슈바르츠제-검은 호수)행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2583m에 위치한 슈바르츠제역에는 아름다운 동명의 호텔이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물고기가 노니는 `검은 호수'가 바로 아래에 있다. 이 호수 옆에는 작은 예배당이 지어져 있는데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체르마트로 갖은 고생을 하며 넘어온 이탈리아 청년 둘이 `만년설의 성모마리아(Mother Maria of the Snow)에게 헌당했다고 한다.

호텔 앞마당에 차려놓은 탁자에서 점잖게(?) 맥주를 한잔 하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날씨는 청명한데 찬바람이 세차다. 마터호른은 말없이 조용히 서있다.

Matterhorn(초원의 뿔, 4478m), 큰바위산인 이산은 1786년에 초등된 몽블랑에 비해 훨씬 늦어져 1865년 7월14일 영국인인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에 의해 초등되었다. 그러나 하산도중 7명의 대원 중 4명이 사망하여 전세계에 충격을 준 산으로 등정확율은 약 50% 정도이다. 정상 위험구간 및 직벽구간에 철심과 로프를 설치해 안전 시설을 정비하였으나 변화 무쌍한 날씨에는 어쩔 수 없어 매년 몇명씩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더군다나 바위의 재질이 우리산과 같이 단단한 화강암재질이 아닌 석회암 재질로 푸석푸석하여 낙석이 빈번하다. 현지 가이드들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낙석이 없는 빠른 길을 통해 10시간 이내로 등반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에게는 12시간 내지 15시간의 등반시간이 필요하다.


7월 15일, 스위스로 넘어가는 익숙한 고갯길에 절로 여유 생겨
체르마트 마을의 생동감과 풍경 즐기는 중 거센 바람 몰아쳐
한달음에 달려간 회른리 산장서 정상 등정 불가능 소식에 허탈



사실 첫 번째 마터호른을 대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하도록 위압감으로 다가 왔고, 작년의 두번째는 오를수 있다는 친근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싸늘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이곳으로 오기전 회른리산장이 6월말까지도 전화를 받지 않아 체르마트 관광 안내소에 전화하니 폭설로 7월초에나 개장한다고 답을 주었다. 산장예약을 7월6일에나 할 수 있었는데 정상부위의 눈이 어떨지 무척 걱정이 된다. 이곳부터 회른리 산장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의 능선산행으로 몇군데 위험구간도 철주와 로프로 정비하여 고소만 이겨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구간으로 꼭 추천하고픈 트레킹구간이다. 힘든 능선길로 땀이 나자 Jail-Partner인 권대장과 자리를 잡고 음료수를 꺼내 든다. 앞쪽으론 체르마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며 뒤쪽으로는 웅대한 마터호른이 우리를 주시한다. 천안시 암벽클럽의 대장을 맡고 있는 권대장과는 작년 마터호른 등반때 만나 솔베이산장(무인대피소, 4000m) 직전에서 돌아선 경험이 있다. “날씨만 조금 받춰 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 때문에 올해도 의기투합, 둘이 달려왔는데 심상치가 않다. 한달음에 달려간 회른리 산장(3260m)은 너무도 적막하다. 바람이 세고 두터운 파카를 입지 않고는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산장안이 춥다. 난로 앞에 앉아 들은 산장주인의 말로는 정상등정은 불가능(impossible)하다고 한다.

산장안의 등산객들은 10명 이내로 우리와 같이 포기하고 내일 다 내려 간단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추울까봐 수통에 버너로 물을 끓여 가슴에 묻고는 잠이 들었다.

◇정상부가 붉게 물든 마터호른.
■7월16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별이 창창한데 밤새 싸락눈이 내려 산장마당을 덥고 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7시까지 잠을 더 자기로 했다.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여기까지 왔으니 서너시간 만이라도 로프를 같이 묶고 등산을 하기로 했다. 산장의 뒤뜰로 이어진 언덕을 넘으면 바로 회른리 릿지 초입이 나타난다. 좌측 편엔 마돈나상의 동상이 있다.

1951년 가이더와 함께 마터호른을 등반하던 한여성이 하산중 로프가 끊어지며 혼자만 살아남은 고마움으로 마돈나상을 제작하여 1962년에 등산로 입구에 세웠다. 그러나 1981년 어느날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다시 1983년에 다시 세워 전보다 위치를 높혀 세워 놓았다.

모든 등산인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한 수호신으로 없어져 도난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첫 번째 마돈나상은 그후에 빙하골짜기에서 다시 찾아 보관중이라고 한다.

초입부 직벽에는 철제 기둥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어제 온 눈으로 조심조심 발자욱을 옮기며 직벽구간을 통과하여 바위 너덜지대로 진입하였다. 둘이 로프로 줄을 묶인 하였지만 확보할 장소가 만만치 않으므로 더욱더 신경이 쓰인다. 여기저기 스프레이로 그려진 진행 방향은 진로방향에 혼란을 준다.

일설에 의하면 현지 가이드 짓이라고 한다. 그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씩 나타나는 확보물에 확보를 하고는 한 시간반 올랐을까 넓은 빙판이 우릴 막아 더 진행을 할수 없다. 어차피 정상을 목표로 한 산행은 아니었기에 미련없이 하산을 결정하고 되돌아 선다. 이제 내려가면 이산을 포기할 것인가? 다시 올 것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초등자인 읨퍼는 9번만에 등정에 성공했다는데 3번째인 나는… 대책이 서지 않는다.

산장에 도착하자 마자 배낭을 꾸려 산장여주인과 작별하고는 급히 하산을 한다. 마지막 권대장과의 결정은 현지 가이드들이 움직여 준다면 오늘 다시 올라와 내일 새벽 재도전하기로 하였다. 다시 오기보단 가이드비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체르마트에 내려와서 가이드사무소에 직행하였는데 점심시간이다. 우리도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는 다시 찾으니 현재 날씨로는 이번 주는 어렵겠다고 잘라 말한다. 차선책도 무산되었으니 전면 계획을 수정하여 내일 4164m의 Breit Horn을 오르기로 결정하고 숙소로 향했다.

허탈감과 저녁으로 먹은 짠 뽕듀맛에 속이 쓰리다.

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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