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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사이<10>
가깝고도 먼 사이<10>
  • 의사신문
  • 승인 2009.05.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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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간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위한 의료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학회가 생기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도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 의료 전문지와 의료 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의사들이 싫어하는 환자의 유형'에 대해 설문조사해 발표한 것이 있다.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인터넷 정보를 통한 의료 지식으로 의사를 테스트하거나 치료 방법을 미리 정해 갖고 오는 환자', `위협적이고 무례한 환자', `검사는 필요 없고 약만 달라는 환자', `지시는 따르지 않고 병이 안 낫는다고 불평하는 환자' 등을 꼽고 있다. 반면에 환자들은 `권위적이며 환자 말을 안 들어주고,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고, 무조건 지시하거나 야단치는 의사'를 싫어한다고 답변했다. 양측 모두 반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불신과 소통의 어려움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한정된 시간에 의사는 진료에 필요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질문하게 되므로 환자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환자의 처음 이야기를 의사가 중단하기까지의 평균 시간은 18초라니 의사들의 인내심에도 문제가 있다.

환자의 질문에 의사가 답을 해도 사용하는 용어의 차이로 인해 환자의 반수 이상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전산화로 인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대화해야 한다면 환자와의 교감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동네 의원도 차츰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지만 3시간 기다려서 3분 진료도 어렵다는 대학병원 진료실에서는 더욱 심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도 없었고 전 국민 건강보험도 없었던 지난 세월의 동네의원 의사와 환자의 관계, 특히 산부인과 환자만을 보는 여의사의 입장은 좀 더 다른 면에서 따뜻한 소통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동네 의사로 진료하다 보면 환자의 가정 문제까지 알게 되고 서로 편한 상대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편안한 아줌마 같은 의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위엄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대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은 외모도 그렇지만 후자에 가깝게 처신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당혹스러운 경우는 환자가 자신의 처지와 나를 비교해보면서 물어 보는 “선생님은 어떠세요?” 라는 질문이다. 소통의 정도가 지나친 경우지만 환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공감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하얀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딸 셋을 두고 아들 낳게 해달라는 엄마들한테는 나도 딸만 있다는 거짓말, 시어머니에 대해 불평하는 엄마들과는 있지도 않은 시어머니 성토를 같이 하기도 했고, 우울증에 불감증 환자가 되기도 했다. 의사도 환자와 같은 병을 앓을 수 있고 비슷한 고민이 있다고 하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아픈 증상도 나아지라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화들도 지금은 희미한 옛 추억의 진료실 풍경이 되었다. 예전에는 기다리는 환자가 있어서 오래 대화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대기 환자가 없어도 필요 이상의 대화는 오고가지 않는다.

보험자가 개입되고 의사의 진료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조장되는 현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 모두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인술과 의료 서비스와 낮은 의료 수가를 적당히 감안해 환자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의료 행위가 현 의료 제도 하에 주어진 의사의 선택이라면 너무 삭막할 것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 같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이해와 소통으로 서로 감동을 주고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하길 바란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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