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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진단의 달인 - 이중달 
병리진단의 달인 - 이중달 
  • 의사신문
  • 승인 2012.08.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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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학, 임상·영상 정보와 연계 선진화 발판 마련

이중달(李重達)
이중달(李重達)은 1934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 1959년 부산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으로 병리학과 첫 인연을 맺었다. 선생은 초창기 부산의대 병리학교실에서 조교로, 군복무를 마친 1965년 전임강사로 근무하였다. 선생은 학생교육에 대한 열정은 많았으나, 당시 매우 열악했던 교육환경과 전통적이고 고루한 교수 방법과 병리진단의 정확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음에 실망하였다. 이 시기에 병리학자들 사이에 병원(외과)병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선진국의 의학 교육과 외과병리 수련의 필요성을 느낀 선생은 1968년 봄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선생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톤대학 병리학교실 및 반스(Barnes) 병원에서 레이시(Lacy) 교수와 앳커먼(Ackerman) 과장의 지도하에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전공의 수련 후 1년간 펠로우로 전세계에서 의뢰되는 희귀하고 어려운 증례들을 경험하였다. 또한 세인트루이스시 보건당국의 자궁암 조기진단사업에 관여하면서 세포 진단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이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세포병리사 양성학교 운영에도 많은 경험을 얻었다.

선생은 귀국하여 부산복음병원, 서울고려병원 병리과 과장으로 재직하였다. 당시 현미경만으로 진단을 내리던 병리의사에게 정확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미경 검색 뿐 아니라 임상정보와 영상 정보의 분석을 동반하고 이를 형태학적 소견과 일치시키는 것임을 강조하여 임상의사와의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고, 이러한 임상지향적 진단방법으로 논리정연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선생 특유의 설득력있고 자신감있는 강의는 병리의사 뿐 아니라 임상의사들의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선생은 1980년 경희의료원에 해부병리과를, 1984년 한양의대에 조직병리과를 창설하는 등 두 대학병원에서 모두 병리과의 기초를 다졌다. 1999년 한양의대에서 정년퇴임 후 현재 송도병원장으로 선생의 능력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선생은 미국 앳커먼 교수에게서 정통 외과병리를 수련 받은 국내 유일의 병리의사였으며, 국내에서 병리과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공의 교육을 시작하였다. 선생은 힘든 수련과 끊임없는 공부로 얻은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병리 진단에 관한한 어느 분야에서나 막힘이 없었으며, 특히 골연부조직병리, 혈액병리 및 폐병리에 정통하였다. 선생은 병리 진단의 오진을 막고, 유능한 병리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매우 엄격하게 전공의 교육을 시행하였다. 병원에 재직하는 30년 내내 전국에서 수련을 받고자 원하는 전공의들의 파견이 끊이지 않았다. 학술대회에서 많은 특강과 단기과정을 이끌면서 외과병리교육에 힘을 쏟았다. 학생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선생은 현미경보다는 육안표본 실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소수 학생군의 개별지도식 실습을 주도하였으며, `기초병리학', `그림으로 설명한 병리학' 등을 저술하였다.

외과병리의 한 분야인 세포병리는 1970년대 초까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산부인과의사의 수하에 있어 그 발달이 늦었다. 선생이 귀국한 1970년대 중반에도 전문성을 갖춘 병리의사는 드물었고, 선별검사를 담당할 병리사도 전무하였다. 선생은 개정된 파파니콜라우 판독보고양식을 도입하였고, 세포학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특히 병리사에 대한 강의는 체계적인 세포병리 교육의 시초였다. 선생이 저술한 `진단세포학'은 국내 도서가 없었던 발간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세포병리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열정은 저술활동으로 이어져 `흡인진단세포학', `원색 도보 진단세포학', `유방과 갑상선: 흡인세포진단의 실제' 등을 집필하였고, 1987년도 동아의료문화상(저작부문)과 1990년도 광혜학술상(외국어논론)을 수상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대한병리학회 부장, 4년간 대한병리학회지 편집위원장, 1992년 대한병리학회장을 역임하였고, 학회 산하 연구회 발족시 림프망내계 연구회(현 혈액병리연구회) 및 심폐병리 연구회 발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986년 대한세포병리학회 창립에 참여하여 학회를 정립하고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편집위원장으로 대한세포병리학회지 창간 및 발간에 많은 힘을 쏟았다. 1993년 대한세포병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집필 : 홍은경(국립암센터 진단검사센터 병리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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