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분비조절에 관한 연구에 헌신한 - 박춘식 
호르몬 분비조절에 관한 연구에 헌신한 - 박춘식 
  • 의사신문
  • 승인 2012.07.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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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신장 연구 초석 및 레닌 조절 기전 규명

박춘식(朴春植)
박춘식(朴春植)은 1939년 전북 김제군 용지면 전기도 없는 오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북중과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58년 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1960년 본과 1학년 여름방학때 홍석기 교수(`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 제2집 p.22 참조)가 실험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한국인의 요성분을 분석하게 되었다. 연구결과 한국인의 요삼투압의 2/3가 소금(NaCl)이며 나머지 1/3이 요소(Urea)로서 이는 서양 사람들을 위주로 한 생리학교과서의 수치와 정반대였다. 이 결과가 교실세미나에서 논의되었는데 왜 그런지를 묻는 홍교수의 질문에 학생 박춘식은 한국인은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므로 혈장 알부민농도가 낮은 상태에서 정상적 혈액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금을 서양인에 비해 3배 많이 섭취하여 세포외 체액을 증가시키기 위한 적응현상 일 것 같다고 답하였다. 그후 의과대학 4년간 여름, 겨울방학 모두를 생리학교실 실험실에서 한국인의 신장기능 연구를 하면서 보냈으며, 이러한 결과들은 한국인 신장기능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의과대학 3학년 2학기말 어느 날 홍석기의 부름을 받고 사무실로 갔더니, 졸업 후에 생리학을 하겠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당시 전기도 없는 고향에 가기 싫어서 방학기간들을 실험실에서 보냈던 것 뿐이며 졸업 후에는 내과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홍교수의 제안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스승의 권유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1964년 졸업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조교로 생리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조교 3년 수료 후 1967년에 육군에 입대하여 57후송병원 내 유행성출혈열 연구반에서 3년6개월간 환자들의 신장기능을 연구하게 되었다. 군에 와서 보니 연구비가 없어 연구비 마련이 큰 문제였다. 때마침 1967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인촌재단 동아자연과학 장려금이란 연구비 지원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1968∼69년 2년간 인촌재단 연구비를 받게 되어 계획했던 연구를 마칠 수 있었다. 현역 장교가 사립기관 연구비를 받아서 군소속 기관에서 연구를 수행한 것은 박춘식의 경우가 아마도 전무후무한 유일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1970년 제대 후 모교 강사로 임용된 후 1971년 미국 미시간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지도교수였던 말빈(R.L. Malvin)교수의 레닌(Renin) 분비에 관한 연구에 박춘식도 동참하게 되었다. 박춘식은 1973년 JG(juxta glomerulus)세포내 칼슘(Ca) 농도가 증가하면 레닌분비를 억제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의 학설과는 정반대되는 연구결과여서 지도교수마저도 그 결과를 의심하였다. 수많은 확인 실험 후 미국생리학회지에 보냈으나 심사위원들 역시 결과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박춘식은 포기하지 않고 이 논문 편집위원이었던 예일대학 라이트(Wright) 교수와 수차례 직접 전화통화로 4년간 설득하여 1978년에 출판되었다. 이후 박춘식의 연구결과는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되어 정설화되었으며 그 후 이 논문은 200여회 이상 인용되었고, 이와 관련된 논문 등이 1000여회 인용될 정도의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 후 1986년 레닌연구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칼슘이 레닌분비를 억제하는데 칼모듈린이라는 단백이 관여함을 밝히고 그 기전을 연구하던 중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초청으로 1991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울산의대 신장학 학생실습을 통해 요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서구인의 수치와 차이가 없어졌음을 보고 감격했다.

박춘식은 30여년을 기다렸던 JG세포주가 1990년에 개발되었음을 알고, 이세포주를 사용하여 칼슘-칼모듈린에 조절되는 단백의 정체를 찾는 연구를 귀국 후 착수하였다. 3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이세포주의 레닌 분비조절능을 정상화 시키는 실험조건을 찾아냈다. 이들 레닌분비조절에 관한 업적으로 1997년 제38회 3·1문화상 자연과학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수상소식을 당시 미국 버팔로시에 살고 있던 스승 홍석기(1963년 제4회 수상자)에게 알렸더니, 스승은 30여년 전 박춘식에게서 생리학자적 자질을 보았기 때문에 생리학을 권했었다고 하였다. 기초학자의 특성이기는 하겠지만 30년 이상 학자생활하면서 한두 가지 연구과제에 정진하는 태도는 그리 흔하지 않기에 타학자의 모범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집필 : 김병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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