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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환자가 될수 있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대하자
`나도 환자가 될수 있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대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2.06.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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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60〉 

■환자 존중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쌍둥이를 출산한 선배가 아기를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출산 당시 뱃속 태아가 세 쌍둥이에다 선배의 남편이 대학 교수라서 그 대학 부설 병원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배가 출산을 하는 순간에 담당 교수가 전공의들을 부르며 “세 쌍둥이 나오는 것 처음 보지? 다들 가까이 와서 자세히 좀 보도록 해. 좀처럼 볼 수 없는 케이스니까”라며 얘기했다는 것이다.

평소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선배로서는 처음 보는 남자 전공의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자신을 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출산 순간의 기쁨보다는 그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컸다는 것. 그래서 출산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주위에 출산하는 사람이 있으면 종합병원에서 출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물론 모든 병원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전공의들을 양성하는 병원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나 희귀 질환의 경우, 교수가 전공의들 교육을 위해 일부러 불러 자세히 보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런 상황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입장을 바꿔보라. 환자로서는 자신이 희귀 병에 걸린 것도 기막히고 슬픈데 의사는 그러한 환자의 감정을 배려해주기 보다는 옆에 있는 전공의에게 “좋은 케이스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이 바로 의사와 환자의 관점 차이다. 의사는 주로 환자의 신체적인 증상만 관심을 갖고 바라보기에 환자가 정작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는지 심리적인 면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진료실 문이 열린 상태에서 환자 옷을 올리고 진찰한다거나 회진 시 다른 환자나 보호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환자 신체를 노출시키는 것 등은 실제 많은 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장면들이다. 특히 병원을 처음 찾은 환자에게는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유방암이나 자궁암 촉진 과정에서 담당 의사 외에 다른 의사가 함께 들어온다거나 환자가 자신의 진료 내역(시술이나 수술 여부)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환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 등은 의사 입장에서는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부분이다.

얼마 전 한 신문 기사에 “30대女 아이 낳는데 낯선 남자가 지켜보자… 수련의 분만 참관… 현장교육? 인권침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다. 간략히 기사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를 출산할 때 수련의가 참관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모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분만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의료진을 제외한 제3자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료계는 “예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단순한 교육일 뿐”이라며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주부 이모(33)씨는 지난 3일 서울의 모 산부인과에서 딸을 출산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의사 어깨너머에서 한 남성이 우두커니 서서 분만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분만실 밖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수술실의 긴장된 분위기 탓에 그가 누구인지도 묻지 못했다. 이씨는 나중에야 그 남자가 수련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당시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웠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했다.”고 털어놓았다. 해당 병원은 이씨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사과했지만 이씨는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뒤였다. 사실, 이런 사례는 수련병원 산부인과에서는 흔한 일이다… 중략… 김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수련의는 곧 산부인과 의사가 될 사람이며, 신분이 의사에 준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산모가 수련의 참관을 거부하면 미래 세대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면서 “응급상황에서는 동의를 구할 여유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2012. 1. 25. 서울신문 기사 발췌.)


교육 목적 수련 참관땐 환자에게 수치심 주지않는 노력 필요
환자 증상 보고 놀라거나 웃음·잡담 등은 심한 불쾌감 유발
의료진의 대화라도 환자 존칭·어휘 사용에 좀 더 신중해야


사실 대학병원에서는 교육과 진료를 겸하다보니 이러한 일이 불가피하게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의 증례가 교육적으로 아무리 유용한 케이스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환자가 들어서 불쾌감이 들 수 있는 “좋은 케이스다” “흔치 않은 사례니 잘 봐라” 등의 말은 지양해야 한다. 환자가 실험체가 아닌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사소한 언행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만약 응급상황이라 환자에게 불가피하게 동의를 구하기 힘든 경우라면 최소한 교육을 위해 참관하는 수련의가 더욱 신뢰감 주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 아무리 예비 의사일지라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구경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예비 의사일지라도 담당 교수를 도우며 행동하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면 환자는 담당 교수와 같은 `나를 치료하는 의사'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멀뚱히 서서 나를 구경하는 사람' 보다는 `담당 교수를 도와 나를 치료해주는 의사'가 훨씬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의 증상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짓거나 웃음을 짓는 것, 옆에 있는 동료와 소곤거리는 것 등의 아마추어 같은 모습은 환자에게는 심한 불쾌감을 유발하니 주의해야 한다. 현재 대학병원에서 예비 의사를 교육하는 일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환자들이 그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종종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 의료진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고 환자나 보호자가 불쾌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의료진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환자라는 사람보다는 환자의 물리적 증상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나 용어 사용 등에서 환자를 무시하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의료진끼리 대화를 나누는 상황일지라도 환자나 보호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황이라면 환자 존칭이나 어휘 사용 등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회진 시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나 전공의가 과장님에게 환자에 대한 보고를 하는 가운데 본인도 모르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니 주의하길 바란다.

얼만 전 한 의학 드라마에서 신경외과 과장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의대 교수가 본인이 뇌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 의사는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아, 그 동안 우리 환자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이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저기 보이는 저 천장을 바라보았겠구나.”라며 의사로 일할 때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병원 복도 천장을 침대차에 누워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수십 년을 매일같이 지나다녔던 병원 복도라는 공간조차도 본인이 의사일 때와 환자일 때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다른 것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의사가 직접 침대차에 누워 수술실에 들어가 보지 않고 환자가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에 들어갈 때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보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의사가 직접 입원실에 누워 하루 종일 회진 시간을 기다려보지 않고 입원 환자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한 여자 내과 의사가 유방암에 걸려 직접 쓴 투병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내과의사의 길을 택한 후배들에게,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을 먹어보고 주사도 맞아보라고 권한다. 밤늦게 이뇨제 주사를 주면 환자들이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한번 맞아보라고, 변비가 심할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약을 쓰는 게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경험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환자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본 사람은 환자의 불평을 무시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그렇다. 좋은 의사는 환자와 입장 바꿔 생각하며 `만약 내가 저 환자라면…' `나도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세상 그 누가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 아무리 명의라 할지라도 본인 건강은 스스로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하루 종일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면 본인도 모르게 환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진심과는 다른 짜증스러운 태도가 나올 수도 있다. 의사도 하나의 사람이기에. 그러나 그렇더라도 기본적으로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나(우리 가족) 또한 언제든 몸이 아픈 환자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환자를 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한 주는 조금만 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며 어루만질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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