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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체크 현악사중주 제1번 〈크로이처 소나타〉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제1번 〈크로이처 소나타〉
  • 의사신문
  • 승인 2012.06.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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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비극 절묘한 표현주의로 집약

야나체크와 러시아 문학과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러시아 문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3년에 작곡된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제1번 역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악보에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영감을 받아”라고 쓰여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람난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결말에서 받은 충격에서 영감을 얻은 야나체크는 이 곡에서 주인공 남편의 질투심과 그 결과로 인한 사랑의 비극적인 측면을 현악사중주로 표현했다. 동시에 그 죽은 여인에 대한 동정심도 표현해 톨스토이에 대한 항의의 뜻도 품고 있다.

야나체크가 말년에 만난 애인 카밀라 시테슬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아파하며, 쓰러져가는 가련한 한 여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그가 소장했던 이 책에는 한 구절에 빨간색으로 줄을 쳐놓은 것이 발견되는데 이 또한 당시 그의 심정을 극명히 보여준다. “나는 그녀의 맞아서 멍든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나의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해 잊어버렸다. 처음으로 나는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낭만주의자인 구스타프 말러보다는 6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보다는 10살이 많았으나 그들보다 앞선 모더니즘적인 표현주의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출하게 된다. 노벨상 작가 밀란 쿤데라의 수필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에서 야나체크에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 수필에서 야나체크의 두 곡의 현악사중주을 일컬어 “야나체크의 절정; 그의 표현주의의 정수가 거기, 총체적 완벽성 안에 집약되어 있다”라고 하면서 야나체크의 표현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찬하고 있다. “`표현주의'라는 말에 잠시 멈춰 본다. 한 번도 자신을 거기에 관계시킨 적은 없으나 사실상 야나체크는 이 말을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유일의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표현이며, 어떤 음정도 그것이 표현이 아니면 존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단순한 기교상의 면: 즉 이행부, 전개부, 대위법적 중음부의 구조, 관현악법의 관례 등이 완전히 부재하게 된다. 그 결과 연주자들로서는 음정 하나하나가 표현인 만큼 그 각 음정이 최대치의 표현력의 빛을 지니게끔 해야 한다. 이 점도 분명히 말해두자: 독일 표현주의는 광란이나 광기 같은 과잉 영혼 상태에 대해 지나친 기호로 특징 지워진다. 내가 야나체크에게서 표현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편협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지극히 풍요로운 감정의 부재이며, 어지러울 만치 정밀하게 짜인, 상냥함과 야만성, 분노와 평화의 대면이다.”

△제1악장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과 비올라로부터 제시되는 우수에 찬 짧은 가락과 함께 곧이어 첼로에 의해 나타나는 무곡풍의 기이한 선율이 교대로 나타난다. 스메타나 사중주단의 비올라 주자 밀란 시캄파에 의하면 제1악장은 소설에 등장했던 불쌍하고 지친 여인의 초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제2악장 여인을 유혹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을 나타냈다고 해석되는 바이올린의 그림자 깃든 노래로 시작된다. 하지만 제1악장의 주제는 이곳에도 고개를 쳐들며 비극성을 암시해준다. 이에 답하는 어두운 비올라와 첼로의 중얼거림은 소설의 답답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곡은 이런 어두움을 씻어 버리려는 듯 빠르게 흘러가지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느릿하게 마감 짓는다. △제3악장 느릿하게 흐르는 슬픈 선율의 흐름을 방해하는 강하고 자극적인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외침이 인상적이다. 이 악장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와 비올라의 반주에 함께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높고 아름다운 외침은 곡 전체의 백미라고 할만하다. △제4악장 느릿하고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와 이를 따르는 세 악기가 파국으로 치닫듯 몰아간다. 곡은 제1악장 첫 주제의 리듬과 변주를 점점 키워가면서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 몰입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편안한 안식을 주는 듯 고요하게 사라져간다.

■들을만한 음반: 야나체크 사중주단[Supraphon, 1963]; 스메타나 사중주단[Denon, 1976]; 하겐 사중주단[DG, 1988]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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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ird 2017-01-06 17:52:42
베토벤이 톨스토이에게서 영감을 받은게 아니고 베토벤-톨스토이-야나체크 이 순서가 맞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