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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해부학의 거목 - 권흥식 
신경해부학의 거목 - 권흥식 
  • 의사신문
  • 승인 2012.06.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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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교과서 한글화 등 후학양성·국제화 앞장

권흥식(權興植)
동계(東溪) 권흥식(權興植)은 1925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45년 일본 사가(佐賀)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49년 졸업하였다.

1953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로 기초의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동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던 중 1955년 미국 뉴욕의과대학 교환교수로 유학하여, 그 곳에서 신경해부학 강좌에 관심을 갖고 국내 신경해부학 강좌의 개설을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부교수로 근무하던 전남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64년 가톨릭대학 의학부 해부학교실 부교수로 부임하였다.

가톨릭대학 의학부 부임 때부터 해부학을 담당하여 교수하였고, 1979년 및 1980년에 해부학 실습재료의 수급과 관련된 행정 처리의 체계화 뿐 아니라 위령제(미사)를 신설하는 등 1985년 타계할 때까지 해부학 교육의 안정화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선생은 학생 강의에 심혈을 기울였다. 강의를 위한 사전 준비가 얼마나 치밀한지 깨알 같은 글씨가 질서 정연하게 들어찬 단어암기용 메모장을 활용한 강의노트와 함께 강의시간 수당 메모지 매수가 늘 일정하여 현재까지도 후배 교수들 사이에서 모범교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선생은 1967년 신경해부학 강좌를 개설하여 교수를 시작하였으며, 획기적으로 신경해부학 실습에 점토(粘土)와 전선(電線)을 활용한 뇌(腦)모형 제작법을 도입하였고 그를 위한 실습교재 `중추신경계의 해부지침'을 저술하여 신경해부학에 대한 쉬운 이해와 접근을 도모하였다.

한편 선생의 신경해부학 강의는 칠판에 직접 그린 완벽한 모식도와 명확한 정의, 체계적인 판서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두 손을 함께 사용하여 척수의 단면도를 완벽히 그려내는 선생의 그림 솜씨는 학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선생은 중추신경계의 해부실습지침 외에도 인체해부학, 인체골학실습지도서, 인체해부실습지침 등 우리말로 된 교과서 및 실습지침서를 여러 권 집필하여 해부학 교과서의 우리글화 작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콩팥(신장)의 토리곁세포(juxtaglomerular cell)의 구조와 기능을 추구한 논문을 비롯하여 육안해부학적, 세포 및 조직화학적, 미세구조적 연구로서 많은 연구 업적을 발표하였으며, 1980년 멕시코 및 1985년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해부학회에도 참석, 논문을 발표하여 국내 해부학회의 장을 넓히는 데에도 일조를 하였다.

도서관장, 성의학보 주간 및 교무처장 등 학내의 다양한 보직 수행을 통한 학내 봉사와 아울러 학회활동도 활발하여 대한해부학회 간사 및 평의원, 대한해부학회지 편집장, 두 차례의 학회장, 대한체질인류학회 회장 등을 맡아 해부학 발전에 앞장섰다.

자상한 성품을 지닌 선생은 매사에 치밀하였고, 근면하고 열정적인 모습의 타고난 교육자로서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으며, 해부학이라는 학문이 기초의학 중의 기초의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그리고 신경해부학의 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교육자이며 의사로 큰 족적을 남겼다.

4남 1녀의 자녀 중 차남 권병덕(서울의대 졸업)은 신경외과학을 전공하였으며, 사위인 김엽은 정형외과학을 전공하였다.

집필 : 천명훈(가톨릭의대 해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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