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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간에 대한 이해로 시작…타 학문에 관심을
의학, 인간에 대한 이해로 시작…타 학문에 관심을
  • 의사신문
  • 승인 2012.05.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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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57〉 

“Ars longa, vita brevis”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라는 말이다.

언젠가 평소 존경하는 의대 교수님께 그 교수님께서 직접 낭독하신 시(時)가 담겨있는 CD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참으로 귀한 선물이었다. 그 교수님께서는 내과 의사로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셨지만 문학과 그림 등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으시다.

그래서 일까. 학회나 모임 등에서 종종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는 물론 편한 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교수님의 깊은 통찰력과 안목,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많이 느끼게 된다.

의학이라는 학문은 간학문이다.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학과 함께 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등 다양한 지식들이 종합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 이야기되는 `동기화 단계'를 모르는 의사는 만성 환자를 교육하는 것이 훨씬 힘들 것이며, 인간의 심리나 성향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의사는 의사와 180도 성향이 다른 환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몇 배로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의학 외에도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기회가 된다면 인간을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문학이나 미술 등에 관심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 문학을 애호하는 치과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치과의사 문인회〉라든가 문학을 사랑하는 의사들과 `의사문학'에 관심이 있는 문인·문학연구자들이 창립한 〈문학의학학회〉 등은 이러한 성격의 모범적인 모임이다. 따뜻함과 평화로운 시 쓰기를 통해 의사 문인의 길을 연 〈문학의학학회〉 마종기 초대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도 마침내 문학의학학회를 창립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고 가슴이 설렌다. 문학의학학회 창립을 계기로 의료와 의학교육의 밑거름이 되고, 문학 발전에도 기여해 나갈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의사들에게 애정 어린 참여를 당부한다.

특히 의학문학학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의학과 문학'은 그동안 질병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만 몰두해 온 의학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인간중심주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며 “환자들은 과학적 진단 너머로 의사들의 따뜻한 위로와 관심을 원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현대의학의 지평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학의 논리는 인간의 논리이며, 문학작품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수하기 위한 가장 심오한 이해의 표현”이라고 하며 “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하는 의학이 문학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 한양대의료원 재직 시절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해 2008년에는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한 이방헌 교수는 한 인터뷰(의료원 소식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저는 작가들처럼 작업 공간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늘 생활 속에서 듣고 보고 느끼는 것들이 수필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늘 메모하고 진료를 하다가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죠. 제일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시공간이 아니라 대상과 얼마나 잘 통하느냐는 것이죠.”라고 이야기하며 모든 일에는 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이 계기가 된다며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인 의사의 소양을 문학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얻은 감동을 끊임없이 메모하고 생각하는데 이는 의사의 의무이자 책임인 학문 연구 자세와 이어진다고 말한다. 늘 냉철하고 신속한 판단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이지만 그 기본은 환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고 환자의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보듬고 치유해야 진짜 의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학회 및 음악·미술 동아리 등 참여 넓은 소통 배울수 있어
진료실서 부족했던 진심 나누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 돼
바쁜 현실로 힘들다면 사이버 공간 활용 새로운 공감대 만들길


한편 얼마 전 연주회를 마친 서울의대 교향악단 동아리 출신 선후배(현직 대학병원 교수, 종합병원, 개인병원 의사 등)들이 주축인 `서울의대 메디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유형래 단장은 연주회를 앞두고 “병원 곳곳에서 바쁜 일과에 쫓기면서도, 우리나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긍지와 음악에 대한 열의만으로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보호자 여러분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음악을 통해 그 분들께 작으나마 희망과 용기를 전하기 바란다”고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바쁜 업무 중에 시간을 쪼개가며 연습해야 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음악을 통해 환자들과 소통하는 의사들. 정말 멋지다.

그렇다.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은 비단 병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글을 통해, 음악을 통해, 그림을 통해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폭 넓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동안 진료실에서 만났던 환자들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의사의 글을 통해 환자는 진료실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의사의 진심어린 마음을 느끼게 되며 의사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의사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환자들은 의사를 더욱 친근하게 생각하며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의외로 많은 의사들이 바쁜 현실을 탓하며 이러한 소통 방식에 심적인 부담을 가진다. 현실적으로 환자 진료 보는 것도 바쁜데 언제 글을 쓰고 악기 연습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글로, 음악으로, 그림 등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문학의학학회〉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틈틈이 자신의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쓰기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진료 모습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되어 그 때는 몰랐던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의사 선생님은 네이버에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 다녀온 여행지, 감명 깊었던 책 등을 적극적으로 올리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 분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이웃들은 동대문에서 옷 장사하시는 아저씨, 회사원, 주부, 대학생 등 참으로 다양하다. 곧 그들과 소통하면서 선생님이 경험하지 못한 환자들의 삶과 고민,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차곡차곡 쌓여서 실제 진료 볼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의대 교수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페이스 북'을 가입하고 들어갔다가 그 교수님의 넓은 인맥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 교수님 페이스 북 친구들이 직업은 물론 연령대가 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너무나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 모든 사람들과 너무나 즐겁게 소통하시는 모습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 혹은 `누님'으로, 그 선생님보다 나이가 적으면 `동생'으로 통했다. 나중에 그 넓은 인맥에 대해 알아보니 그 선생님은 오프라인 상의 조용한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다양한 취미들을 갖고 있었고 페이스 북 친구들 역시 취미를 공유하며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취미 중에는 연극과 트럼펫도 있었는데, 실제 작년에는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송년회 때 연주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만 하다. 필자는 늘 조용한 모습으로 수줍게 미소 짓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남녀노소 다양한 환자들과 소통이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이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그 누구와도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보가 재산인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 요구되는 스마트한 의사가 아니겠는가. 진료를 가장 잘 보는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와 소통 잘 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환자가 “네” 혹은 “아니오”라고 답변하더라도 환자의 솔직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예리함과 관찰력, 상상력이 있을 때 환자의 정확한 문제를 찾게 되며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최상의 치료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렇게 환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들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한 주는 세상과 소통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에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 것 같다.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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