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건학의 기반을 닦은 - 윤덕진
아동보건학의 기반을 닦은 - 윤덕진
  • 의사신문
  • 승인 2012.05.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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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전문진료 도입 등 아동 보건·육아 선진화

윤덕진(尹德鎭)
보원(普園) 윤덕진(尹德鎭)은 1919년 강화도에서 출생하여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중에 소아마비에 걸려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문학교 입학자 검정시험(현 대학입시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의대)에 입학하였고 1944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성모병원에서 당직의로 수년간 근무하였고, 강화도를 거쳐 서울에서 개업하고 있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 피난생활을 하면서 해군병원에서 문관으로 진료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51년부터 전라북도 개정(開井)농촌위생연구소 개정중앙병원 소아과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아동보건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위스콘신 대학병원에서 2년 동안 소아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이어서 존스홉킨스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7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생이 개정중앙병원 소아과에서 봉직할 당시는 광복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부족한 시기였다. 농촌의 가정의 위생상태와 어린이의 건강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에는 한 국가사회의 문화척도가 되는 생명통계가 없음에 착안하여 옥구군 개정면을 대상으로 영유아 사망에 관한 조사연구 결과를 미국 소아과학회지에 발표하였으니 우리나라 영유아 보건상태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술연구논문으로서 아동보건학의 선각자적 역할을 한 공헌이 크다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홍역 중에 가재의 생즙을 먹이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민간 홍역치료법 때문에 폐흡충증 또는 뇌흡충증이 발병해서 희생되는 어린이가 적지 않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경기도 일대를 구석구석 방문하여 채취한 가재에서 디스토마 감염률을 역학적으로 조사한 결과와 우리나라 이유기 영유아의 식이내용과 성장발육 상태를 연구한 결과를 국제적인 잡지에 발표하는 등 아동보건 및 사회계몽에 많은 업적을 쌓았다.

특히 우리나라 어린이의 표준성장발육치가 없던터라 1965년에 대한소아과학회로부터 위임을 받아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현재도 한국아동표준성장발육치의 기초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어린이 건강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계몽의 필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선생은 1959년 세브란스병원에 육아지도회를 창설하여 실제로 어머니들과 전공의들에게 육아지도 방법을 교육하는 한편 `여성과 육아'(1964), `육아와 교육'(1969), `육아대백과사전'(1971) 등 육아관련 서적을 출판하였다.

선생은 1966년부터 소아과학교실의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세브란스병원 소아과에 `육아지도 및 사회소아과학, 소아심장학, 소아신장학, 소아혈액학, 소아알레르기학, 소아신경학, 소아위장학, 소아내분비학, 소아종양학, 신생아학' 등 10개의 전문 진료과목을 개설함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세부전문과목에 따라 진료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정년퇴임한 후인 1988년에는 후배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고취할 목적으로 사재를 털어 `보원(普園) 학술상'을 마련하여 지난 24년동안 매년 연세의대 교수 중에서 우수논문을 발표한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등 후배 사랑을 펼쳐오고 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선생은 1965년 전문직을 가진 소아마비 성인들이 모여서 `장애인들의 자립과 권리보호를 위한' 단체인 `삼애회(三愛會, 현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세의대 `허약아동연구소'를 개설하여(1970) 장애 아동들이 평등한 시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데 일조를 해왔다.

대한소아과학회 이사장 및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회발전에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1982년 제4차 아세아 소아과학회를 서울에 유치하여 준비위원장으로서 학술대회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국내외 활동이 인정되어 1981년 5.16 민족상(학예부)을 수상하였다.

후배교수들은 `윤덕진'교수를 `끈덕진'교수로 부르곤 하였다. 이는 선생이 어떤 목표가 세워지면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놀라운 집념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끈기' 정신 때문이라고 하였다.

슬하에는 3남 1녀가 있으며 장남(도광, 소아과전문의)과 차남(용광, 내과전문의)은 연세의대를 나온 의료인이다.

집필 : 김규언(연세의대 소아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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