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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달라도 췌장이식 통해 당뇨병 완치 가능
혈액형 달라도 췌장이식 통해 당뇨병 완치 가능
  • 표혜미 기자
  • 승인 2012.05.17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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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불가능해 보이던 ‘혈액형 부적합 췌장 신장 동시이식’ 국내 첫 성공

한국의 앞선 의료기술 덕분에 당뇨 합병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하던 러시아 환자가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췌장 동시이식을 받은 러시아 환자 타티아나씨가 남편 알렉산드르씨와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른쪽은 수술을 집도한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한덕종 교수.
지난 11일 서울아산병원(원장·박성욱) 일반외과 한덕종 교수는 극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복막투석까지 받아오던 러시아의 타티아나(Nikiforova, Tatiana 女/37세) 환자에게 혈액형이 다른 아버지 니콜라이(Nidiforova Nikolai 남/60세)씨의 신장과 췌장 일부를 떼어 동시에 이식하는 ‘혈액형 부적합 췌장-신장 동시이식 수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혈액형 부적합 장기이식은 간, 신장을 대상으로만 이뤄졌으며 이식 후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췌장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었다.

특히 췌장은 간, 신장 등 다른 장기와는 다르게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소화액이라고 불리며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 췌장액을 분비하기 때문에 수술 후 소화액이 환자의 인체에 잘 적응하며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세밀하고 정교한 수술기법과 환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췌장 이식 수술의 성공으로 국내 장기이식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은 물론,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에게도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이번 수술은 혈액형이 다른 기증자의 췌장과 신장이 환자에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B형인 타티아나 환자에게 면역억제제를 주입하고, 혈장교환술 등의 처치를 한 뒤 A형인 니콜라이씨의 췌장과 신장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4월4일 수술을 받은 타티아나 환자는 한 달이 지난 현재 정상적인 식사는 물론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여 퇴원을 앞두고 있다.

환자의 당뇨 수치도 수술 전에는 정상인보다 약 6배 이상 높은 680mg/dl까지 올라갈 정도로 위급한 상태를 보였으나, 현재는 정상 수치인 110mg/dl을 유지해 인슐린을 끊은 것은 물론 당뇨병에서 해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타티아나 환자가 새 삶을 얻기까지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노력 외에도 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 알렉산드르(Sasha Alexandra 남, 42세)씨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환자는 24년 전인 13살 때부터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안되는 제1형(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으로 진단을 받아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4년 전부터는 당뇨합병증이 악화돼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혈액형이 맞지 않는 고난이도의 장기이식은 러시아에서는 불가능했고, 해외의 전문병원을 알아보던 그녀의 남편 알렉산드르씨는 해외에서 치료를 받은 러시아 국민들이 의료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웹 블로그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수준을 알게 되어 본인이 직접 서울아산병원에 연락을 취해 부인의 수술을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알렉산드르씨는 한국 의료정보를 얻은 러시아의 인터넷 블로그에 부인의 급박한 이야기를 올렸고, 부부가 살고 있는 러시아 야쿠츠크 지역의 신문기사에 타티아나의 사연이 실리기도 했다.

드디어 이식 수술을 위해 알렉산드르씨는 그녀의 부인 타티아나 환자, 타티아나의 아버지인 니콜라이씨와 함께 지난 3월5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을 찾은 타티아나 가족은 한덕종 교수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로 당뇨병으로 신장기능이 망가져 임시방편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한덕종 교수가 혈액형 부적합을 극복하고 췌장도 함께 이식해 결국 당뇨병을 완치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한 것이다.

한덕종 교수의 한국 최초의 ‘혈액형 부적합 췌장-신장 동시이식’ 성공은 가족의 사랑과 의료진의 노력, 그리고 하늘의 도움이 함께한 한 편의 기적과 같은 이야기였다.

알렉산드르씨는 “인터넷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기술을 접하고 부인의 망가진 신장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는데, 췌장-신장 동시이식을 통해 당뇨병도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의료진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관심을 가져준 러시아 국민들에게 부인의 완치된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수술에 성공한 한덕종 교수는 “러시아 국민들의 성원과 바람을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의료 기술로 보답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며, “혈액형이 맞지 않는 환자의 췌장이식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국내 췌장이식 수준은 세계적인 만큼, 장기기증 인식이 활성화 돼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가며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수많은 당뇨환자들이 고통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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