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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학발전의 산증인 - 김순용
영상의학발전의 산증인 - 김순용
  • 의사신문
  • 승인 2012.05.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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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CT도입·MRI 개발 등 영상의학의 선구자

김순용(金舜鏞)
김순용(金舜鏞)은 1922년 황해도 반률군 청석리에서 태어나 해주 공립중학교를 거쳐 1944년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평양의과대학과 평양중앙결핵진료소에 근무하였다. 단신으로 월남하여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대구 제일육군병원 방사선과에 근무하였고 1954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1968년까지 재직하였다.

1954년에 유엔 한국부흥위원단의 원조결정에 따라 스위스로부터 파견된 고문단을 받아 1955년 말까지 진단과 치료에 참여하게 하면서 선진 방사선의학을 소개받았고, 또한 원조로 들어온 투시진단기, 단층촬영기, 심부치료기, 표재치료기 등 새로 도입된 기기들의 사용 및 교육을 받았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고 질서도 어지러운 때였으나 방사선과만은 새로운 시설과 선진국 고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최고의 방사선촬영 장비를 갖추고 선진국 의학과 기술을 도입하는 창구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진료와 연구 및 교육에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955년 국내처음으로 단층촬영소견을 발표하였고, 1959년에는 Am. J. Roentgenology에 Billroth 1형 절제술의 X-선 소견 논문을 발표하여 `방사선진단학 교과서'(Meschan 저) `소화기방사선진단학편'(Margulis and Burhensse 저)에 인용되었다.

1957∼58년에는 미국 뉴욕 코넬대학 방사선과 특별연구원, 1961∼62년에는 스웨덴 카로린스카의과대학 특별연구원 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하여 선진국의 방사선학을 학생교육, 진료, 연구에 접목하였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과 전문의가 전무하다시피 한 대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및 전국 학회활동에 이바지하였다.

1959년 급속카셋교환기를 직접 제작하여 국내 최초로 심혈관촬영을 하여 심장과 폐혈관을 촬영하였다. 그 첫 예가 제임스 스웨어 신드롬(James Swyer Syndrome, 당시는 Unilateral hyperlucent lung)임을 증명하였다.

선생은 1977년 국내 최초로 CT를 도입하여 당시까지 복부내부 장기 중 특히 췌장을 규명코자 전신촬영용 CT를 도입하였고 당시 뇌와 복부가 50대 50정도나 될 정도로 복부촬영을 많이 하여 복부 질환에 CT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렸다. 또한 1982년부터는 KAIST의 조장희를 지도교수로 MRI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제4차 AOCR(Asia Oseanian Congress of Radiology)에 발표하여 한국에서도 MRI가 개발되고 있음을 세계에 알렸다.

1968년 대구에서 경북X-선과의원을 개설하여 방사선과도 개업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 주었으며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영상진료가 바쁜 중에도 경북대학교병원 초독회와 증례토론회에 참석하여 후학을 지도하는 등 학문적 끈을 놓지 않았다.

1974년부터는 서울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 교수로 상아탑으로 복귀하여 병원장도 역임하였다. 재임 시 강직한 성품과 결단성 있는 추진력으로 병원의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여 경영가로서의 우수성을 발휘하였다. 근검절약, 협동, 승용차 태워주기 운동 등 솔선수범하는 생활자세로 밝은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제자 사랑의 온화함, 정확한 판단과 결단력, 청렴 검소의 생활은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교수, 의료원장,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경희대학교 영상의학과에서는 선생을 기리는 청석(선생의 호)영상의학 심포지엄을 매년 열고 있다.

2009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 복부영상의학학회에서 금메달을 수여 받았다. 선생은 대한방사선 1세대 창립멤버로서 젊은 방사선과의사들에게 영상의학에 대한 사고와 열정을 고조시킨 선각자적 공이 크고 CT시대가 열리자 그는 의학에서 영상의학이 리드하는 역할을 하도록 모든 역량을 다하여 대한소화기영상의학회 창시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복부영상의학에 대한 열정과 아시아 복부영상의학전문의들의 열의를 인정하여 ASAR은 자랑스럽게 선생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다.

김일성 치하의 공산주의를 싫어해 남하했으며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살았고, `추한 한국인'을 쓴 일본인 작가를 끈질긴 노력으로 찾아내어 혼을 내주는 등 애국자적 역할도 하였다.

집필 : 강덕식(경북의대 영상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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