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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결핵 치료의 개척자 - 한문식
척추결핵 치료의 개척자 - 한문식
  • 의사신문
  • 승인 2012.05.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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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스학회 창립·정형외과학 중추적 역할 수행

한문식(韓文植)
한문식(韓文植)은 1919년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출생하였다. 1937년 대구 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43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의 부수로 재직하다 광복 후 1946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3년부터는 한국전쟁으로 폐쇄된 정형외과를 새로 재건하고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형외과로 독립 진료를 시작하였다. 1957년에는 서울대학교병원 외과가 일반외과, 정형외과, 흉곽외과, 신경외과의 4개 과로 분리가 되어 각 과별로 진료와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이때 선생은 정형외과의 과장으로 일하였다.

1959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으로 일 년간 최신 의학을 습득하기 위해 연수를 다녀온 후, 정형외과의 발전에 힘쓰다가 196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정형외과학이 독립된 교실로 창설되면서 초대 주임교수로 취임하였다. 이후 1979년까지 주임교수로 재직했으며 1984년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로 활동하다 2000년 별세하였다.

선생은 정형외과학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정형외과학회의 이사장(1963∼67)과 회장(1967)으로서 학회를 이끌었으며 척추결핵이 주 전공이었던 선생은 결핵 치료에 필수적인 화학약물요법의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대한화학요법학회 회장(1974∼76)으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서태평양 지역 국가 간의 학문적 교류에도 힘을 기울여 서태평양 정형외과학회 한국지부장(1981∼84)으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대한류마티스학회의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 회장(1980∼84)으로서 우리나라 류마티스학의 발전에도 기여를 하였다.

선생의 주 연구 분야는 척추결핵이었다. 선생이 활동하던 1950년대부터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 결핵이 창궐하던 시기였다. 폐를 침범하는 폐결핵 뿐만 아니라 근골격계결핵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였는데, 정형외과 수술 환자의 반 수는 결핵으로 인한 환자일 정도로 그 폐해는 실로 엄청났다. 수많은 사람이 결핵으로 불구가 되고 사망하던 시기에 선생은 관절과 골 결핵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골 파괴와 한냉 농양 형성으로 척추 후만증과 같은 영구 변형과 사지 마비를 야기하는 척추결핵치료에 일생을 바쳤다.

척추결핵의 병태생리를 연구하였고 치료 효과가 우수한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부단히 환자에게 시술하면서 치료 결과를 높여갔다. 선생은 자신이 익히고 경험한 사실들을 수 많은 학술 논문으로 발표하여 후학들의 척추결핵 치료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선생의 노력은 우리나라 결핵 퇴치 사업에 있어 큰 성공 요인이 되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제자들은 선생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한 단행본 `척추결핵'을 선생의 정념퇴임 기념 책자로 발간하여 헌정한바 있다.

제자인 필자가 본 선생은 평소 과묵하여 쉽게 대하기 어려웠으나 사려가 매우 깊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타인의 잘못을 그 자리에서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나무라는 법은 없었으나 반드시 스스로 깨우치도록 배려하고 유도하였다. 평소 테니스를 열심히 하고 약주를 즐겼는데 회식 자리에서는 가벼운 농도 하고 아래, 위 가리지 않고 스스럼 없이 어울렸다. 부인 김숙진과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다.

집필 : 김영민(서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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