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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관심·배려에서 시작
신뢰,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관심·배려에서 시작
  • 의사신문
  • 승인 2012.05.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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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54〉

얼마 전 한 종합병원 재활의학과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는 재활병원 회진돌 때는 절대 구두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제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사고나 합병증으로 장애를 갖게 되어 걷지 못하게 되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러 가며 구두 소리(걷는 소리)를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를 못했습니다. 환자들 마음을 잘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전 밤에 회식을 하고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리에 골절을 당하고 꽤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누워만 있다 보니 복도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너무 귀에 거슬리는 거예요. 걷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그 소리가 너무 싫더라고요. 그제야 걷지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들의 마음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그 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회진 돌때는 절대 걷는 소리 나는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요. 스스로 환자 입장이 되니까 환자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잘 알겠더라고요. 그 때부터 저는 환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줄 수 있는 의사가 가장 좋은 의사라고 생각하며 진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 재활의학과 선생님은 회진 때 걷는 소리가 나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회진하는 전공의들에게도 소리 나는 신발을 신지 않도록 당부 했다고 한다. 또한 병실에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환자들을 위해 환자들을 만나러 갈 때는 냄새 나는 것이나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양하고 가능하면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간다고 했다.

이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필자의 후배에게 들었던 산부인과 선생님이 생각났다. `환자에 대한 배려'에 있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배는 임신 후 입덧이 심해 조금만 냄새가 이상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심한 구역질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후배가 다니는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그런 초기 임산부들의 마음을 잘 모르시는지 늘 진한 향수를 뿌리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늘 친절함에도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배려 있는 선생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후배와 병원을 함께 다녔던 환자들 중에는 향수 냄새 때문에 다른 선생님으로 진료를 바꾸거나 아예 병원을 옮긴 환자도 있다고 하니 분명 일개 환자가 느낀 사견은 아닐 것이다.

곧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들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 그 선생님이 환자들을 힘들게 하려고 향수를 뿌렸겠는가. 분명 환자들에게 더 좋은 모습, 향기로운 모습을 전하려고 신경 쓴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 향을 맡는 환자들의 입장을 면밀히 고려하지 못했기에 결국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에게는 향기로움이 아닌 곤혹스러움을 전한 것이다.

만약 그 선생님이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을 보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환자들에게 그 향은 긍정적으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곧 진료 시 의사의 모든 행위는 그 행위 자체보다도 실제 그 의사에게 진료 받는 환자들이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 중 `여우와 학'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화창한 봄날, 학은 친구인 여우네 집에 식사 초대를 받게 된다. 기쁜 마음으로 여우네 집에 방문한 학은 집안 전체에 퍼져 있는 향긋한 수프 냄새에 침을 꼴깍 삼키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우는 맛있는 수프를 넓은 접시에 담아서 많이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부리가 긴 학은 넓은 접시에 담긴 수프를 단 한 방울도 먹지 못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상대의 입장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행동들은 설령 그 행동이 상대를 위해서 했던 것일지라도 상대에게는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필자가 진료 현장에서 모니터를 해보면 의사 선생님들 중에는 진료 시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환자를 위해 애써 농담을 건네며 환자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분들도 계시고 환자가 너무 걱정할까봐 일부러 가볍게 이야기하며 미소를 보여주시는 분도 계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행동들이 환자들에게 정확히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를 위한 농담·미소가 상황 따라 오히려 역효과 될수 있어
     자신의 진료 분야 환자 특성·마음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환자들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관심 가져야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위해서 일부러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픔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고통을 함께 이해해주며 “아무개님, 많이 힘드시죠? 힘든 마음 잘 압니다. 힘내세요!”라는 공감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가 칼럼에서 늘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명의가 되려면 차트보다 환자를 먼저 봐야 한다. 최소한 자신이 전문으로 보는 진료 분야의 환자들 특성과 마음상태,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 등은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몸을 다루는 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그것은 해부학이나 병리학에서 다루는 몸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의 심리나 특성, 마음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일까. 환자들이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환자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말에 힘을 얻는지 등까지 잘 아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은 대부분 오랜 진료 경험으로 얻어진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조건 진료를 오래 보았다고 환자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치매 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 선생님께서 외래보시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선생님께서는 중증 치매 환자를 마치 자신의 어머니나 아내처럼 너무나 살갑게 대하고 계셨다. 시종일관 환자와 보호자에게 따뜻한 표정을 지어주셨고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환자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떻게 저렇게 환자들에게 살갑게 대하실 수 있을까?' 필자 역시 궁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님도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의사, 당신은 환자'라는 생각을 갖고 환자에게 살가운 말 한 마디를 건넨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렇게 진료 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몰랐다고 했다. 그러던 중 공부를 하러 미국에 연수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교수님께서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미국 교수님께서는 외래에서 환자를 맞이하기 전 늘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계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치매 환자 진료 시 환자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능하면 따뜻한 손으로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치매 환자들에게 큰 도움은 못 주더라도 최소한 의사가 진료를 보면서 따뜻한 손으로 환자의 손을 잡아주면 차가운 손으로 잡아줄 때보다 환자가 훨씬 편안함을 느끼지 않겠냐는 것이다.

늘 이러한 마음으로 환자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하는 미국 교수님의 모습을 통해 이 선생님은 느낀 점이 많았고 의사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만나는 환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라면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어떤 것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늘 관심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 눈물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중년 여성들을 주로 만나는 의사라면 진료 시 그들을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실제 시술이나 약물치료 만큼 중요하다. 반면 젊은 여성 환자들을 주로 만나는 의사라면, 입에서 담배 냄새나 입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혹은 진료 시 환자와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또한 귀에 문제가 있거나 고령의 나이로 귀가 잘 안 들리는 환자들을 만나는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 의사라면 다른 의사들보나 표정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귀가 안 들리는 환자들은 일반 환자들보다 의사의 표정을 더욱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의사가 무의식중에 미간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 그 만큼 몇 배로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그 모든 환자에게 해당될 수 있지만 특히 환자의 증상이나 마음상태, 성별, 직업, 연령 등에 맞춰 더욱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환자가 싫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번 한 주는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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