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는 첼로를 위해 단 하나의 소나타만을 썼다. 이 작품은 1901년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회복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쓰기 시작한 곡으로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완성한 직후에 완성되었다. 이 곡의 초연은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고 피아니스트 아나톨리 브란도우코프에게 헌정되었다.
러시아향기 가득한 작품으로 피아노가 첼로의 반주가 아닌 각각 대등하고 독자적인 움직임으로 연주되면서 때로는 서로를 받쳐주고 때로는 대단한 기교를 요하면서 스케일이 큰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과 정열이 어우러진 러시아 낭만파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쇼팽의 첼로소나타와 같은 조로 되어 있어 쇼팽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만의 강렬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러시아음악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와 연결되는 서구적인 모스크바 악파의 정통을 이어받아 풍부한 선율과 세련된 서정성이 스며있다. 그의 음악에서는 동시대의 스크리아빈 등 인상주의와 같이 근대 러시아 음악의 진취성은 없으나 러시아의 마지막 낭만주의 큰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스크리아빈이 프랑스 인상주의 기법과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음악을 펼쳐나갔다면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민족적인 특성의 토양 위에 그만의 낭만적인 어법을 혼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작곡가 모두 쇼팽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았는데 스크리아빈은 그들의 작곡 기법을 받아들인 채 작품을 창조하고 연주하였다면 라흐마니노프는 그들의 피아노 음악을 엄격한 훈련을 통해 얻은 기교와 음악성을 새롭게 재해석하였다. 사실 스크리아빈은 오직 자신의 작품만을 연주하였고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반면 라흐마니노프는 20세기 음악에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한 적이 있듯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면서도 베토벤, 슈만, 쇼팽 등 서구 음악가들의 작품들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놀라운 기교를 가진 피아니스트이다.
1906년 드레스덴으로 옮겨 작곡과 연주에 몰두한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작곡한 후 미국을 방문하여 뉴욕에서 자신의 연주로 이 곡을 초연하고 미국전역을 연주여행을 하면서 호평을 받는다. 그 후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와 음악생활을 하였지만 1917년 10월 혁명 이후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스칸디나비아반도를 거쳐 스위스에 잠시 머문 뒤 1918년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에서 그는 창작활동만으로는 가족의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작곡보다는 연주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함께 라흐마니노프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훗날 그는 “사실 나는 작곡을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 라고 말할 정도로 작곡을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보고자 하였으나 현실은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제1악장 Lento-Allegro moderato 잘 짜인 소나타 형식으로 첫 도입부에 첼로가 먼저 서주를 노래하고 피아노가 이어 주제를 노래한다. 서로 고뇌하면서 긴밀한 대화를 하는 듯 어우러지면서 격정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제2악장 Allegro scherzando 제1주제가 저음의 피아노와 피치카토의 첼로로 스케르초 풍으로 연주되면서 피아노의 분산화음과 함께 격정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첼로의 선율이 제시된다.
△제3악장 Andante 피아노의 분산 화음 속에 첼로가 향수를 자극하는 정겨운 주제를 대화하듯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한다. △제4악장 Allegro mosso 마치 제1악장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듯 확고하고 당당한 피아노 선율에 이어 첼로가 제1주제를 노래한 후 첼로가 피차카토의 선율로 상큼하게 제2주제를 연주한다. 이후 피아노의 현란한 아르페지오와 저음의 첼로 선율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 들을만한 음반: 다니엘 샤프란(첼로), 펠릭스 고트리프(피아노)(Melodyia, 1956);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알렉산더 데뒤킨(DG, 1966); 린 하렐(첼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1984); 요요 마(첼로), 엠마누엘 엑스(CBS, 2003)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첼로와 어우러진 러시아풍 피아노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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