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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 광교산 종주 기행
산행기 - 광교산 종주 기행
  • 의사신문
  • 승인 2012.04.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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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진 <마포·서울이비인후과의원장>

고대하던 `산행 버킷리스트' 모두 이뤄 기쁜 날

박석진 원장
2008년 `잭 니콜슨'이 나오는 `버킷리스트'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정을 적어 놓은 리스트라 기억합니다. 또한 KBS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평소에 꿈만 꾸고 못해보던 것을 하나하나 해가면서 꿈을 이루는 프로그램이지요.

저에게도 일종의 버킷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요즘 등산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그 동안 이런 저런 핑계와 구실로 등산은 저에게는 먼 취미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맘 속 깊은 곳에서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되던 산행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계시는 이재일 전 서울시의사 산악회 회장님 덕분에 설악산의 오색·대청·천불동 코스를 몇 년전에, 그리고 작년 초에는 태백산 주목을 보면서 눈꽃산행을 해 보았습니다. 그간 근처에서 다닌 대모산, 북한산, 도봉산 등도 멋진 산이지만 혼자서는 쉽게 갈 수 없는 몇몇 산을 늘 맘속에 정해놓고 언젠가는 가 봐야겠다고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세 가지를 정해봤습니다. 1. 설악산 공룡코스 2. 한라산 백록담 올라가보기3. 서울근처의 종주산행인 청계-광교 코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운이 좋게도 모두 현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작년 10월, 박병권 현 서울시의사 산악회 회장님과 우연히 공룡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덥석 물어(?) 새벽 3시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서북능선을 따라 대청에 오른 후 양폭을 거쳐 공룡을 종주하고 마등령에서 다시 신흥사쪽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오후 6시에 산행이 끝났으니 총 15시간이 걸리는 저에게는 제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대장정이였습니다. 내려오면서 “내 다시 여기 오나 봐라” 할 정도로 힘은 들었지만, 아직도 공룡의 멋진 능선과 봉우리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친구인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이신 조해석 선생이 한라산 백록담 가보자는 연락을 하셔서. “내 버킷리스트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면서 따라나서 8시간 코스의 백록담 코스를 무사히 따라가 보았습니다. 맑은 하늘과 산정상에서 한눈에 보이는 제주도 전경, 1m 이상 쌓인 하얀 눈을 밟아 올라가면서, `이래서 한라산!, 한라산! 하는 구나' 하는 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개의 리스트는 해결이 되었고, 하나 남은 청계광교 종주코스는 혼자서도 가 볼까 하는 맘도 전에 들었지만, 온라인상의 종주 후기를 보니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리고 중간의 길도 잘 모르겠고, 종주산행의 끝인 `수원에서 어떻게 서울로 돌아오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 맘속으로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서울시의사 산악회 연재성 등반대장님께서 일요일 새벽에 종주산행을 가자고 연락이 온 겁니다. “앗싸!!!” 다른 일정을 정중히 취소하고, 아침 8시 모임 장소로 나갔습니다.


공룡코스·백롬담의 여운으로 지내던 중 종주 산행 연락에 쾌재
매봉·청계산·석기봉 지나며 과천과 눈덮인 관악산 풍경에 취해
우담바라도 넘고 힘든 고비길 지나니 드디어 광교 저수지 보여



전에는 청계산을 양재역에서 버스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새로 생긴 지하철, 신분당선을 이용하여 청계산 입구 역에서 내렸습니다. 새로 생긴 지하철이라 아주 쾌적하더군요. 역사 밖으로 나오면 원터골이란 곳에서 산행이 시작됩니다. 산행 들머리에서 김밥 한 줄을 챙긴 후 서서히 오르막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전날 내린 눈으로 3월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배낭에서 아이젠들을 꺼내시는데, 준비와 경험이 부족한 저는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해 다른 선생님 아이젠 한 짝으로 얻어 신고 가다가, 산중턱 간이매점에서 하나 사서 산행을 했습니다. 이때 교훈은 우리나라 3월은 도심에서나 봄이지, 산에서는 아직 겨울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산에 간다면 4월 중순까지는 아이젠은 필수라고 생각됩니다.

매봉, 청계산 정상, 석기봉을 지나 이수봉까지 부지런히 가봅니다. 능선 우측으로는 과천의 서울대공원과 정부청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북쪽으로는 눈 덮인 관악산이 보이는 멋진 조망입니다. 보통의 청계산 산행은 여기서 옛골이라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느 정도 힘이 들어 보통 때 같으면 여기서 바로 옛골로 하산하고 싶었겠지만, 오늘 저에게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하는 날이라 국사봉쪽으로 다시 치고 올라갑니다.

이 봉우리가 생각보다 힘이 들더군요. 국사봉을 내려오면 하오고개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위로 생긴 구름다리를 지나 `우담-바라'라는 독특한 명칭을 가진 산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나타나는 봉우리가 우담산, 이어 나타나는 봉우리가 바라산 입니다. 불교 용어로 여겨지는 멋진 산 이름입니다. 우담산 정상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밥과 여러 과일, 커피와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아, 바로 이 맛이야!” 또 하나의 행복을 느껴봅니다.

이때 저쪽 편에서, 저희와는 반대로 아침에 광교산에서 시작해서 청계산으로 넘어오시는 세분의 선생님-서윤석 고문님, 강미자 원장님, 조인혜 원장님-들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이제 절반은 했으니 온만큼만 가보자 하며 힘든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바라산으로 올라가는 비탈은 365계단이라는 또 하나의 명물을 만나게 됩니다. 15계단 간격으로 입춘부터 대설까지 24절기를 재미나게 설명해 놓아, 다음 설명을 보기 위해 힘들지만,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계단은 정말로 싫습니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는 백운산, 그리고 또 몇 번의 쉽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맛보면서 광교산의 시루봉, 비로봉, 형제봉을 지납니다. 이 때부터 경기대학교 옆에 있는 `반딧불이 화장실'이란 멋진 이름을 가진 곳까지, 평탄하게 내리막으로 연결되는, 매우 부드러운 흙길로 만들어진 멋진 산책코스 5km 즐기며 내려갑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다 보니 어느덧 산행이 끝났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산행이 오후 5시에 끝났으니 모두 9시간 걸렸더군요. 눈길만 아니라면 8시간 정도면 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머리에 내려서니 광교저수지가 보이고, 수원까지 왔으니 수원갈비 먹고 가자고 하여, 시내버스 타고 장안문(북문)까지 가서 수원갈비로 포식하였습니다. 9시간 산행 후라 뭐든 맛있을 터이지만, 생갈비와 양념갈비를 구워 먹다보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많은 비용을 저의 버킷리스트 완성을 옆에서 동반해주신 박병권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님이 다 부담해주셔서,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보를 드리자면 수원 화성 북문에서 서울 가는 직행광역버스가 많더군요. 2000원이고 서울시내 교통신용카드가 됩니다. 과천을 거쳐 사당이나 교대 강남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저희는 3000번 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내림으로 하루의 즐거운 일정을 끝냈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이제 3개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했으니, 또 다른 나의 버킷리스트 산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이 글은 산행 후 2일 후인 화요일에 쓰는데, 양쪽 허벅지가 찌릿찌릿한 상쾌한 고통을 즐기고 있습니다. 불타는 허벅지!!! 남자의 힘은 굵은 허벅지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박석진 <마포·서울이비인후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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