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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야옹이 〈하〉-
나의 사랑 야옹이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2.04.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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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성 <성북구의사회 명예회장>

13년전 우리집을 찾은 `마루' 이젠 한식구 돼

노순성 명예회장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고양이를 썩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나쁜 편견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도 고양이를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소년시절 선친께서는 개를 무척 좋아하셔서 여러 마리를 번갈아 오랫동안 단독주택에서 키우셨습니다. 먹여주고 배설물을 치워야하고 털 날리고 냄새나니까 어머니가 좋아하실 리 없지만 어쩔 수없이 잘 보살피셨습니다. 교육시킨다고 장충단공원에 있는 애견훈련학교에도 보냈습니다.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견공도 있었고, 가정부가 쥐 잡으려고 놓은 약을 잘못 먹고 몸부림치다 집을 뛰쳐나가는 견공도 있었습니다. 선친께서 며칠 밤을 잠꼬대로 집나간 견공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후론 집안에서 동물을 기른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 후 아이들이 강아지를 기르자고 졸라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3년前 대학입학한지 얼마 안 된 차남이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고 들어와서, 엄마 몰래 방안에서만 키웠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려면 사료 1∼2가지, 밥그릇, 물그릇 한 개씩 조그만 플라스틱 화장실이 필수입니다. 바닥에 특수모래를 깔아주면 수시로 드나들며 배설하고, 모래가 배설물을 흡수하여 공처럼 굳으면 치우면 됩니다.

첫날 제가 눈치 챘지만 비밀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지 않아 들키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잠깐 화장실 가면서 제 방문을 꼭 닫지 않아 아기 고양이가 아장아장 마루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와이프는 한눈에 반하여 안아주며 예쁘다고 손으로 쓰다듬고 뺨에 대보기도 하며 기뻐했습니다. 이름을 `마루'라고 지었습니다. 무뚝뚝한 아들 둘만 있는 우리는 딸처럼 예쁘게 키우며 즐거워했습니다. 1년6개월이 지나자 발정기가 오고 몸부림을 칩니다. 잘생긴 숫놈을 수소문해 데려다가 우리 아파트에서 신방을 차려주었습니다. 데리고 온 신랑 `루카'의 주인은 아리따운 처녀였습니다.

사흘을 동거 시킨 끝에 어렵게 교미에 성공하여 신랑 여주인에겐 종자 값을 넉넉히 주어 보냈습니다. 임신 두 달여 만에 새끼 네 마리를 낳아 3마리는 친지들에게 나눠주고, 암컷 새끼 한 마리만 같이 키웠습니다. 본래 몸이 허약한 어미 `마루'는 새끼를 낳고난 후 체중이 줄어 6kg밖에 안됩니다. 딸은 크면서 야성을 드러내 성질도 팔팔하고 힘도 좋아 어미를 힘으로 누르고 구박하여, 부득이 딸을 분가시키고 말았습니다. `마루'는 얌전, 조심성, 붙임성 있는 성품 때문에 안주인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고양이 좋아한 적 없지만 둘째 아들이 새끼 고양이 데려와
반대하던 아내도 한눈에 반해 딸처럼 키우며 즐거운 나날
절친했던 친구 2명이 소천할때 `마루'가 밤새 울어준 적도



1996년 가을. 30년 절친 외과전문의 H박사가 오랜 기침 끝에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방사선치료·항암제 주사 등 고생 끝에 완치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999년 가을 감기합병증으로 중환자실 입원 1주일 만에 타계하였습니다. 마지막 문병을 다녀온 날 밤에 H박사가 `가로수가 우거진 숲길을 헤치며 슈퍼맨처럼 무지 빠른 속도로 계속 날아가는 꿈'을 꾸다가 놀래서 새벽 3시경 눈을 떠보니 야옹이가 앞발로 제 어깨를 툭툭 치다가 제 몸 위를 `야∼옹'거리며 걷고 있었지요.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조금 전에 운명을 했다는 군요.

2005년 봄날. K박사가 전액 스폰서로 주말 1박2일 제주도여행을 가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부부 왕복항공권과 골프CC, 콘도 예약까지 마쳤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고교동기동창 절친 W형이 자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져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입원하여 3일 만에 타계했습니다. 3일간 퇴근 후 면회를 다녀와 골아 떨어져 깊이 잠이 들었는데 고양이 `마루'가 밤새도록 `야∼옹'하면서 제 몸 위를 분주하게 오르내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 5시경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어보니 새벽 2시경 W형이 타계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소천을 제게 알리려고 깨웠던 것입니다. 고양이에게는 6감, 초능력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제가 제일 좋아했던 친구 둘을 골라서 일찍 데려가셨습니다. 빈 가슴을 `마루'의 재롱을 보며 채워 나갔습니다. [2010. 6. 18]

와이프는 먹이 담당. 매일 화장실 청소, 가끔 발톱 깎아주기, 목욕시키기, 털 고르기 등은 제 담당입니다. 고양이 마루는 물을 싫어하여, 목욕 시킬 때 발톱을 드러내어 할퀴기도 하며 온몸으로 저항합니다.

제가 우리 집 보물 1호 `마루'를 목욕시키다가 도망치려고 용쓰기에 뒷다리를 좀 세게 잡았더니 `똑'하고 부러져 골절이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늙어서 수술도, 기브스도 못하고 두 달간 가둬놓고 못 움직이게 하란다'고 철망 집을 얻어왔습니다. 놀래서 인지 아파서 인지 `마루'가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마루'를 철창 집에 넣어 내 침대 위에 모셔놓고 24시간 밀착 간호, 이따금씩 눈물을 흘리시며 동반 단식 중입니다. 아∼ 어찌 이리 황당한 일이…!

접근 금지령이 내려 죄인처럼 침대 방에서 쫓겨나(?) 옆방에서 3주간 독방 신세∼ 아∼∼슬픈 내 운명이여! 그저 탈 없이 뼈가 빨리 붙어주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마루'는 올해 고양이 나이로는 환갑을 넘긴 13살입니다. 머지않아 찾아올 그녀의 죽음이 벌써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평소엔 걸음걸이도 느리고 힘없어 보입니다. 퇴근하여 현관을 들어서면 마루에 드러누워 사지를 뻗어 전신 스트레칭을 하고, 옆으로 구르면서 저를 열열이 환영합니다. 온몸을 쓰다듬고, 긁어주고, 토닥거려주고, 안아서 흔들어주면 신바람이 나서 흥분해서 살짝 제 발을 깨물기도 하고, 전력 질주하며 집 한 바퀴를 돕니다.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니다가, 소파 위에 앉으면 옆에 따라와 앉아서, 눈을 깜박깜박 하거나 얼굴을 오래도록 뚫어져라 빤히 쳐다봅니다.

`야∼옹' 하고 부르면 곧바로 `야∼옹'하고 대답합니다. 겨울에는 주인이 잠들기 전에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자리를 미리 따뜻하게 덥혀도 주고 밤에 잠자리에 오르면 몸 위로 오르내리면서 전신 안마도 해줍니다. 아유∼예뻐라∼ 야옹 야∼옹∼! 부디 만수무강을 빕니다.

노순성 성북구의사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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