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의학사전을 편찬한 해부학자 - 최금덕
영한의학사전을 편찬한 해부학자 - 최금덕
  • 의사신문
  • 승인 2012.04.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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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대 해부학교실 기틀 마련·체질인류학 개척

최금덕(崔金德)
최금덕(崔金德)은 1914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의 영생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에 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다른 사람들이 잘 택하지 않는 해부학을 선택하여 40여년을 초지일관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전쟁의 격동기에 교실을 이끌어오면서 오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의 기틀을 공고히 한 훌륭한 지도자요, 학생들의 추앙을 받는 교수였다. 한국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했을 때에는 모교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역임한 일도 있었다.

1959년 미국 미시간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유학하였으며 한국인의 맥관계통에 관한 형태학적 연구와 체질인류학적 연구에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체질인류학적 연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생소한 것으로서 그는 이 연구를 통하여 후학들에게 연구의 방향 뿐 아니라 학자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도 비만세포와 cholinesterase에 대한 조직학적 연구에도 업적을 남김으로써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만에 대해 이미 그 당시에 관심을 기울인 선각자였다.

최금덕은 학생 강의에 있어서도 종래의 계통해부학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선진국형인 국소해부학적 강의로 전환하는 시도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후학들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뜻에서 영한의학사전도 편찬하였다.

그는 또 문학과 철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는데 특히 `헤겔'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고고학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매우 소탈하여 의식과 격식을 초월하여 교실원 및 학생들과 잘 어울렸으며 회식자리에서 흥이 나면 이태리 가곡인 `오 솔레미오'를 열창하곤 했으며 연구에 몰두하다가도 한밤중에 창문을 열고 가곡을 열창하는 등 정과 멋이 넘쳤다.

대한해부학회, 대한체질인류학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학회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학교에서는 학생과장으로 학생지도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신앙적으로는 기독교 장로였으며 대한민국 국민훈장동백장과 모란장을 수훈하였다. 정년퇴임 후 1986년에 영면하였다.

집필 : 황의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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