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기내과학의 개척자 - 이성호
순환기내과학의 개척자 - 이성호
  • 의사신문
  • 승인 2012.04.0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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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질환·고혈압 연구 선진화 및 노인병학회 창립

이성호(李聖浩)
이성호(李聖浩)는 1914년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예과에 입학했다. 이성호가 의학을 선택한 데는 그보다 10년 위인 친형 이성봉(李聖鳳)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봉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경성제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성부민병원 소아과장도 역임하였다. 1941년 의학부를 졸업한 이성호는 같은 해 제1병리학교실에 들어가 기초연구에 매진하다가 1944년에는 경성제대부속의원 내과의 부수(副手)로 발령받았다. 당시 내과는 호흡기와 소화기, 순환기를 각각 주로 하는 3개의 강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순환기 및 신경질환 연구를 주로 하던 시노자키 데츠시로(篠崎哲四郞) 교수의 제3내과에 들어갔고, 이것이 그가 심장 및 신경내과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경성대학으로 개편된 뒤 이성호는 이돈희가 이끄는 제3내과의 조수가 되었으며 그 해 말 〈타액선 `홀몬'의 `디아스타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을 주 논문으로 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 뒤로는 강사가 된 그에게 한국전쟁은 시련과 성장의 계기였는데 이돈희와 이성봉이 납북되었다. 서울의대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제3내과 조교수가 되었지만 전쟁 후 열악한 상황 속에서 순환기학의 개척은 지난한 일이었다.

이 상황에 숨통을 트여준 것이 1955년 미네소타대학으로 떠난 1년간의 연수였다. 이성호는 그곳에서 태평양전쟁 이후 접하기 어려웠던 서구의 연구 성과를 풍성히 접할 수 있었다. 그는 함께 연수를 마치고 온 동료 교수들과 함께 자유로운 미국식 의학교육을 도입하여 심전도(心電圖), 소화기질환, 방사선, 생검(生檢) 등에 관한 컨퍼런스를 열며 의욕적으로 후진 양성에 임했다. 평소 인자한 성품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젠틀맨'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의대의 신경내과 강의도 맡았다. 일본강점시대 이래 내과 안에 있었던 신경내과는 미국 의학의 영향이 커지면서 점차 정신과 영역으로 옮겨가는 추세였는데, 이성호는 그 과도기에 신경내과학 교육의 공백을 채웠던 것이다.

귀국 직후 심장질환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성호는 초기에는 심장질환의 진단에 필요한 주제에 몰두했다. C-반응 단백질에 대한 테스트나 흉부압박이 순환기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발살바 테스트(Valsalva Test) 등을 검토했다. 1960년대에는 심전도 및 심탄도(心彈圖)를 이용하여 심장 및 심혈관 질환에 대한 진단법을 정밀하게 만드는데 주력했다.

특히 1963년 대한의학협회 종합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심장판막증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322례의 심장판막증 가운데 승모판 질환이 84.8%에 달했으며 그 주원인이 가난하고 위생환경과 영양상태가 나쁜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는 류마티스열이었음을 밝혀냈다. 또한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고혈압과 같은 서구적 질환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고혈압증의 대다수이면서 원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은 본태성(本態性) 고혈압에 대한 임상연구를 제자들과 함께 꾸준히 전개했다.

이성호는 대한순환기학회의 출범과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대한순환기학회는 김동익, 강승호, 이성호 등이 1957년 발기인회를 조직한 뒤 1959년에 내과학회 내 전문학회로서 정식 출범하였다. 그가 동 학회의 4∼6대 회장을 역임하던 중 대한순환기학회는 1961년 제5차부터는 대한내과학회 학술대회와 분리하여 독자적인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62년에는 국제심장재단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학문적 성과와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에는 대한내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1964년에는 심장판막증을 비롯한 심장질환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인해 제5회 3.1문화상(자연과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동안의 심장질환, 고혈압 관계 연구 및 학회 활동을 바탕으로 노인병 질환의 타개를 위해 학계의 힘을 모아 1968년 대한노인병학회를 창립했으며 초대 회장으로 활약했다. 그의 연구팀에서는 60세 이상 201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노년기 질환의 통계적 관찰〉에서 노인병 발생의 장기별 빈도 조사에서 순환기계가 29.8%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소화기, 호흡기 순이었는데 순환기계 질환 중에는 고혈압이 가장 높은 것을 밝혀냈다.

1979년 퇴직 후 서울 인사동에서 잠시 개업했던 이성호는 2004년 4남 1녀를 남기고 별세했다. 장남 이대일(李大一)은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가업을 이었다(이대일내과의원장, 별세).

집필 : 이흥기(한신대 국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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