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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삼중주 제2번 라단조 작품번호 9〈비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삼중주 제2번 라단조 작품번호 9〈비가〉
  • 의사신문
  • 승인 2012.04.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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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을 애도

라흐마니노프는 일생동안 4개의 피아노협주곡, 3개의 교향곡, 3편의 오페라와 함께 많은 피아노곡과 성악곡들을 작곡하였는데 실내악 작품은 첼로소나타와 두 곡의 피아노삼중주 등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1892년 19세 때 작곡한 피아노삼중주 제1번은 단 악장의 소나타 형식으로 깊은 애절함이 배어있다.

이 작품의 서주에 라흐마니노프가 `Lento lugubre'라고 명시해 놓았을 정도로 구슬픈 느낌의 주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반복되는 선율(오스티나토)의 반주 위에 피아노에 의해 노래하면서 후반부는 빠른 분위기로 넘어가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려하고 강렬한 피아노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낸 뒤 마지막에는 근엄한 장송곡풍 선율의 피아노 반주 위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끝을 맺고 있다.

피아노삼중주 제1번을 발표하고 1년이 지난 1893년 차이코프스키의 서거 소식을 들은 라흐마니노프는 비통함에 잠겨 `위대한 예술가를 위하여'라는 부제로 피아노삼중주를 쓰게 된다. 이 곡이 바로 피아노삼중주 제2번 〈비가〉이다. 1881년 차이코프스키가 존경하던 예술가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서거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작곡한 피아노삼중주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모델로 하여 라흐마니노프 나름대로의 어법으로 작곡하였다.

1894년 1월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후 1907년에 일부 수정하는 등 여러 차례 개정하여 발표하였다. 일찍이 차이코프스키는 젊은 라흐마니노프를 높이 평가하여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많은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은인과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돌연한 죽음은 라흐마니노프에게 크나큰 슬픔이었다.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죽음을 승화시켰듯 차이코프스키를 애도하는 마음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안나가 끝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운명을 처연하게 그려낸 톨스토이 대하소설 「안나 까레리나」를 감독 버나드 로즈가 영화화 한 〈안나 까레리나〉에서 피아노삼중주 제2번의 슬픈 선율은 또 다른 〈비가〉인 피아노삼중주 제1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비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제1악장 Moderato Allegro vivace 피아노가 음울한 분위기의 단조 선율을 반복하면서 첼로와 바이올린이 애절한 선율을 연주한 후 천천히 음악이 진행하면서 피아노의 오스티나토는 옥타브 음형으로 바뀌어 강렬함이 더해간다. 제2주제는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갑자기 폭발할 듯 음을 뿜어내면서 발전부로 진행되다 화려한 아르페지오 위에서 더 강렬하게 표현되면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Quasi variazione 변주 악장으로 6개의 변주로 엮어지는데 차이코프스키 피아노삼중주의 제2악장에서 그랬듯이 그의 작품 환상곡 〈바위〉의 주제 선율을 변주곡 주제로 사용하고 있다. 제1변주 피아노의 빠른 분산음의 패시지 위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한 후 제2변주 피아노의 독주로 주 선율을 노래하고 제3변주 현의 피치카토 코드 반주 위에 피아노의 밝은 선율이 나타난다. 제4변주 현의 짧은 주제가 반복 연주되는 동안 피아노가 주제를 노래한다. 제5변주 바이올린의 트레몰로 위에 유려한 첼로의 선율이 이어지면서 주제를 연주한다. 제6변주 세 악기에 의해 함께 명상적이면서도 깊은 슬픔을 절제적인 선율로 그려나간다. 제7변주 코다 형식으로 훗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1번의 주제로 사용된 선율이 나타난다.

△제3악장 Allegro risoluto 짧고 다이내믹한 악장으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피아노 어법이 깊은 슬픔을 표현하면 바이올린과 첼로에 의해 극적인 폭발음들이 표출되다가 결국 약음기를 사용한 현악기의 정적인 선율로 조용히 끝을 맺는다.

■ 들을만한 음반: 보로딘 트리오[Chandos, 1983]; 에프게니 스베틀라노프(피아노), 레오니드 코간(바이올린), 페도르 루자노프(첼로)[Melodiya, 1975]; 보자르 트리오[Philips, 1986]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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