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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 a단조 작품번호 77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 a단조 작품번호 77
  • 의사신문
  • 승인 2012.03.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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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정권 비판과 자유에 대한 갈망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은 1947년에 구상하여 1948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작품에는 `인종 정화에 대한 비극', `자유를 향한 감정에 대한 억압' 그리고 구소련 정권에 대한 `사악한 악마의 무차별한 만행에 대한 고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비판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가 이 작품을 완성한 후 초연하기까지는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소련정부는 전쟁의 승리로 용감해져 광분해 있는 인민들을 다시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집단체포와 유배가 다시 재개되었고 한편으로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찬양하면서 반유대주의 운동을 촉발시켰다.

문화계에서는 주다노프에 의한 비판이 시행되면서 `부르주아 데카당스 미학'에 오염된 작가와 미술가, 작곡가 등 서구 현대화된 예술가들이 인민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성향의 예술가들을 매섭게 공격하고 있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쇼스타코비치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고 그 결과 교향곡 제9번이 발표 당시에는 `우리의 위대한 승리의 개가'라는 극찬을 받았으나 그 이듬해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의해 `경박하고 지조 없는 졸작',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완전히 결여된 어둠의 작품'이라는 글과 함께 무참하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그는 1948년 이후 조용히 칩거에 들어갔고 완성해 놓은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의 초연을 연기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중적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겉으론 정권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고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반성문이나 정부를 찬양하는 선언문 등을 낭독하거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영화음악 〈베를린 함락〉, 〈잊을 수 없는 1919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독재자 비위를 맞췄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현실에 타협하는 자신의 처지를 역겨워하며 분노에 싸여 있었다.

마침내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그 후계자 흐루시초프에 의해 악랄하고 무자비했던 독재자에 대한 격하운동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해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를 그린 교향곡 제10번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드디어 2년 후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을 발표하게 된다.

△제1악장 Nocturn. Allegro 야상곡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지만 곡 전반에 걸쳐 침울한 분위기로 `감정의 억압'을 표현하면서 `반유대주의에 의한 인종 정화의 비극'을 그린 무미건조한 느린 선율이 이어지는 바이올린 독주 속에는 유대민요의 선율이 배어 있다.

△제2악장 Scherzo. Allegro 귀에 거슬리는 바이올린 독주의 기계적인 리듬과 금속성의 강한 악센트와 함께 풍자적인 뉘앙스를 지닌 악장으로 독주 바이올린의 절대적인 날렵한 기교를 요하고 있다. 악상으로는 자신의 음악적 지문인 이니셜 DSCH(Dmitri Schostakovich)을 주제로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 DSCH는 훗날 교향곡 제1, 5, 10번과 현악사중주 제8번, 피아노삼중주에서도 등장한다.

△제3악장 Passacaglia. Andante-Cadenza (attacca) 교향곡 제7번의 서주부분에서 인용된 `침공의 주제'와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주제, 8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파사칼리아와 함께 뒤이어 따라 나오는 카덴차까지 독주 바이올린의 초인적 집중력과 표현력을 요구하는 악장으로서 곡 전체의 핵심이다.

△제4악장 Burlesque. Allegro con brio-presto 풍자 해학이라는 뜻이 담긴 소제목에 맞게 들뜬 러시아 민속 축제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농민 무곡의 리듬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러시아 시골 유랑 악사들의 피리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 쾌활하고 흥겨우면서도 한편 열광적인 리듬은 왠지 신랄한 느낌마저 든다.

■ 들을만한 음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지휘), 레닌그라드 필[Melodiya, 1956];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막심 쇼스타코비치(지휘), 뉴 필하모니아[EMI, 1972]; 이차크 펄만(바이올린), 주빈 메타(지휘), 이스라엘 필[EMI, 1988]; 막심 벤게로프(바이올린),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지휘), 런던 심포니[Teldec, 1994]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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