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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기행〈상〉
한라산 기행〈상〉
  • 의사신문
  • 승인 2012.03.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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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관 <강동 노민관가정의학과의원>

◇한라산 동능선 정상부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기 위해 제주도로 떠난다


노민관 원장
서울시의사산악회 훈련팀에 들어온 후 매년 겨울이면 한라산을 간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까맣게 잊고 지내던 1월 어느 날, 등반대장님으로부터 한라산 등반 신청자는 알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이 왔다. 드디어 백록담을 볼 수 있으려나?

여러 가지 핑계 겸 이유로 한라산은 접근이 쉽지 않았고, 사실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다. 원행산행을 연중행사로 다녀오긴 했어도 해외여행 느낌인 제주도까지 산행을 가기엔 아직 나의 내공이 일천했기도 했고 솔직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였다.

그런데 재작년 그러니까 2010년 12월 말, 사업차 제주도를 자주 다니는 선배로부터 가족여행 겸 제주도를 가자는 제안이 왔다. 어차피 휴일을 이용한 여행이라 그냥, OK하고 아무 준비 없이 훌쩍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콘도에서 저녁 먹는 자리에서 내가 산행을 좋아한다니 “한라산이나 한 번 다녀올까?” 이 선배 무엇이든 쉽게 접근하는 분이라, “그러죠” 나도 쉽게 받아, 다음 날 아침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침 9시경 카운터에 “한라산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문의한 결과, “눈이 너무 와서 통행금지랍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글쎄요. 성판악, 영실 코스 다 출입금지라는데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터미널까지 가보면 입구까지는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투였다. 괜히 시간낭비하지 말자는 암묵적 동의하에 그냥 민속마을 구경하고, 회나 좀 먹다 별 아쉬움 없이 그렇게 첫 한라산과의 인연은 없던 것처럼 묻혀버렸다.

글쎄 난 별로 기대도 없이 갔던 터라 별 서운함이나 미련도 없었는데, 이 선배는 한달 뒤 다시 전화를 해왔다. “노 원장 한라산이나 한 번 갈까?” 이번에는 아예 제주도가 아니고, 한라산이란다. “좋죠” 질문이 쉬우면 답도 쉬운 법!

이번에는 제대로 배낭도 챙기고, 신발도 중등산화에, 눈이 그렇게 많이 온다니 스패츠, 아이젠 제대로 갖추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예 애들도 빼고 단출히 두 부부만 널따란 콘도에 단 4명만 썰렁히(?) 앉아 밥을 먹으려니 무슨 정예부대 원정대 같은 느낌이다. 차도 렌트하지 않고,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가기로 하고, 전화로 물어보니 진달래대피소까지 12시 이전에 도착해야 한단다. 12시면 좀 여유가 있다 싶어 느즈막히 잠자리에 들어 백록담에 오르는 기분 좋은 상상에 흐믓한 밤을 보냈는데….

원행산행 때는 정확하고 세밀한 준비가 필수인데, 우리는 좀 어설픈 원정대(?)여서 이런 게 많이 부족했다. 아니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산행실력들도 일천하고 하니 좀 일찍 가자고 하여 10시에 성판악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거기가 진달래 대피소라고 생각했던 것. 아이고! 여기서 3시간은 가야 진달래 대피소란다. 난리 났다. 선배는 어차피 12까지 도착은 불가능할 듯하니, 아예 진달래 대피소까지만 가잔다. 일단 가보자 하고 출발하였으나, 가는 도중에 있는 이정표가 우리를 질리게 하고 말았다. 진달래대피소까지 7.3Km, 백록담까지는 다시 2.3Km, 도합 9.6Km, 왕복은 허걱! 거의 20Km다. 그래도 백록담을 가보자는 전의가 불씨만큼은 남아있었으나, 이정표를 보는 순간 갑자기 여유가 생기면서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구 앞지르며 내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이! 미련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쯧쯧.


2010년 준비없이 한라산 오르다 결국 백록담 못오르고 하산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중 한라산 원행산행 참석 연락와 기뻐
산행 전날 너무 마음이 들떠 잠 못이뤄 비몽사몽 등반 시작



사라 오름쯤 도착하였을 때 부인들의 체력은 거의 고갈되어, 삼보일배(三步一拜) 수준이다. 이 템포에 맞춰가기는 너무 지루하여 먼저 진달래 대피소까지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앞서 나갔다.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어! 아직까지 백록담 올라가는 문이 열려있다.

하지만 결국, 일행이 다 도착한 시간은 30분이 훌쩍 지난 뒤였다. 결국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부지런히 앞서간 사람들은 모두 백록담으로 향해갔고, 쯧쯧 혀 차던 우리는 예정대로(?) 진달래 대피소에서 컵라면 한 그릇씩 사먹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1시간 30분만(?) 더 가면 한라산 정상 백록담인데 저기 보이는 저 곳이 바로 거긴데, 그 때의 아쉬움이란! 역시 고지는 꿈꾸는 자의 것인가 보다.

그런데 그 한라산을, 그 백록담을 1년이 지나 다시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당근 무조건 참석 콜이다. 단 30분 때문에 1박2일을 무위로 보낸 작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지어 울화가 치미는데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으랴! 제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배낭을 점검하고, 찬바람과 눈에 대비하여 온갖 보호 장구를 챙겨 넣었다. 하지만 내심, 정상 바로 아래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고, 그리 힘들지 않았던 터라 자신이 있다. 일행도 많으니 중간 정도에는 끼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짜여진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 무조건 한라산 정상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왠지 싱겁게까지 느껴지는 한라산, 백록담!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잠깐 들러 미리 챙겨놓은 배낭을 들고 전철을 탔다. 1시간 이상의 거리라 책도 한 권 챙겨 읽다가, 느긋하게 김포공항역에 내려 일행에 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관이다. 스틱을 모두 모아 따로 포장하고, 배낭의 끈도 잘 정돈하여 레인커버를 씌워 집어넣고, 주민등록증을 모아 표를 받고 복잡하다. 총무는 정말 정신이 없을 것 같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내 옆에 앉은 분들이 모두 초면이다. 얼핏만 봐도 내공들이 장난 아니다. 알고 보니 한 분은 마라톤을 5년간 했다 하고, 한 분은 본과 3학년 때 수업까지 제끼고 매주 목요일 등산을 갔다고 한다. 듣고 보니 내공이 세도 보통 센 게 아닌가 보다. 에고에고 이 분들은 먼저 보내야겠다.

공항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 겸 최종점검 자리. 회장님 및 총무의 인사말과 당부. 반가운 얼굴들, 새로운 얼굴들, 인사를 나누고 숙소인 한화콘도로!

콘도에 도착하니 바람도 시원하고 상쾌하다. 내일 약간 흐리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으나 달도 보이고 왠지 기분이 좋다. 문제는 그거였다. 기분이 좋았다는 거. 결국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이루고, 너무 기분에 취해버렸다. 6시30분 버스에 탑승하니 비몽사몽 정신이 아련하다. 성판악에 도착하여 스패츠,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남들은 벌써 출발하고 후미도 보이지 않는다. 안되겠다. 스패츠는 그냥 놔두고, 아이젠만 착용하고 뒤를 쫓는다.

잎 모양이 밤나무같이 생긴 굴거리나무, 높게 솟은 삼나무숲을 지나 속밭 대피소에 도착하니 일행이 보인다. 하지만, 다들 쉬셨는지 우리가 도착하니 바로 출발. 홍기석 선생과 나만 남기곤 다들 또 앞서 가버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쉬었다 가야지! 이관우 선생님 내외분이 우리 뒤에 오셔서 마음이 좀 가볍다. 그런데, 앗! 이관우 선생님 내외분이다. 가족사진을 찍는 틈을 타 얼른 출발. 맨 마지막에 가는 건 그래도 자존심 문제니까.

사라오름 앞에 도착하니, 제주도가 고향인 양종욱 선생님이 꼭 다녀오라고 했다며, 등반대장님이 진달래 대피소쪽 길을 막아서신다. 몸은 힘들지만, 작년에도 못 다녀온 터라 가긴 가야겠다. 10여분을 올라가니 분화구로 생각되는 빙판의 넓은 터가 있는데, 그 면적이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커 보인다. 아마 얼음이 녹으면 커다란 호수일 터!

여름이면 훨씬 더 수려한 풍광일 듯 싶다. 오름의 가장자리 최정상 부위에 다다르니 전망대가 있고, 제주시와 그 앞바다, 그리고 눈덮인 한라산 정상부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성판악을 출발하여 아무런 조망없이 하얀 세상에만 젖었다가, 탁 트인 이 곳에 올라오니 이제야 정신이 들면서 또 하루를 맞는 느낌이 든다.

노민관 <강동 노민관가정의학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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