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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번호 93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번호 93
  • 의사신문
  • 승인 2012.03.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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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 성찰의 선율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전통적인 음악분석가들의 혼동을 유발시켜 그의 교향곡들을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적 구조는 순수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주 상황에 따른 극적인 사고에 의해 구상되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10번은 쇼스타코비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작곡된 교향곡 제7번과 제8번에서 스탈린에 대한 추앙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래서 교향곡 제9번에서도 스탈린과 공산당은 기대가 컸다. 그러나 교향곡 제9번은 그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었다. 이 곡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신랄한 투쟁의식과 스탈린에 대한 일종의 반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후 스탈린의 측근들과 동료 작곡가들로부터 `형식주의자'로 신랄한 비판과 심한 고초를 당하게 된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줘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스탈린에 대한 찬양이 포함된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등 `정권접대용' 작품들을 만들어 비난의 소용돌이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 외에도 체제 선전성과 거리가 먼 순수음악 계통의 곡들도 조용히 작곡하거나 구상했고, 이들 작품은 스탈린 사망 후에 발표되었다. 교향곡 제10번도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 무서운 속도로 쓰기 시작해 그 해 가을 완성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 발표는 `9번째 교향곡의 저주'에서 회복되어 그의 명성을 되찾을 뿐 아니라 그의 제2의 작품세계를 여는 계기도 되었다. 이 교향곡 후부터는 좀 더 내면적으로 침잠해가면서 개인적인 사색이 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즉 교향곡 제9번 이후 짓눌린 그의 힘겨운 삶의 긴 터널의 끝에서 빠져나오는 듯 새롭게 충만한 정신적 느슨함이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곡이다.

△제1악장 Moderato 장대한 스케일로 전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악기들의 나지막한 연주가 끝나면 클라리넷 솔로가 내성적이고 섬세한 분위기로 바꿔가며 줄기차게 반복한 후 흐름이 가라앉고 나면 플루트 솔로가 나지막하게 심한 도약이나 강약 대비 없이 비교적 담담한 형태로 연주한다. 이것이 다른 악기들로 옮겨가서 다시 고조되고, 그동안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금관악기들과 타악기들도 등장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제2악장 Allegro 스탈린과 연관성이 짙은 악장으로서 비교적 가라앉고 내성적인 분위기였던 제1악장과는 상극을 이루는 빠르고 과격한 악장으로 특정한 형식보다는 스피드와 악상의 굴곡을 강조하는 환상곡 스타일이다. 현악기들의 거친 연주 바로 뒤에 나오는 목관악기들의 선율을 이리저리 변형시키면서 계속 끼워 넣고 있다. 네 개 악장 중 가장 짧은 길이로 형식미가 파괴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도 공식 석상에서 이를 인정했으나 수정하지는 않았다.

△제3악장 Allegro Largo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이 저음의 짤막한 악상을 제시하며 시작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1악장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편이지만, 악상 사이의 강렬한 대비나 율동의 가미로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바이올린이 제시한 악상에 이어 플루트와 피콜로가 두 번째 주요 악상을 제시한다. 이어진 호른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 제1악장 첫머리에 나오는 호른 선율과 비슷하다.

△제4악장 Andante Allegro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우울한 느낌의 악상을 조용히 켜면서 시작한 후 목관악기들의 솔로 연주로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클라리넷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통 춤이자 춤곡인 고파크 스타일로 속도가 빨라지고 분위기도 비교적 밝게 변한다. 흥미로운 것은 곡 전반에 쇼스타코비치 이니셜 악상들이 간간히 나타나면서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 들을만한 음반: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지휘), 레닌그라드 필[Erato, 1976]; 제나디 로제스트벤스키(지휘), 소련문화성 관현악단[Melodyia, 1986]; 네미 예르비(지휘),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Chandos, 1988];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DG, 1981]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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