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전문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동시에 갖춰야
전문가는 전문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동시에 갖춰야
  • 의사신문
  • 승인 2012.03.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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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49〉

얼마 전 필자가 출강하고 있는 한 대학교 수업 시간에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주제로 한 사례 발표 시간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부재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몇몇 학생들에 의해 `병원 의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들이 제시한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점들이 모두 그 동안 의사신문 칼럼에서 필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실제 의사들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 중 두 명의 학생이 밝힌 `의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사례를 소개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학생의 사례다. 이 학생은 대학교 4학년 여학생으로 평소 걱정이 많고 의존적인 성격이다. 최근 졸업과 취업 준비로 심적인 스트레스가 커서 그런지 만성 소화 불량에 편두통까지 겹쳐 진료 잘 보는 좋은 병원을 알아보던 중 동네 한 병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본 그 병원 간판에 유명 대학의 마크가 들어가 있어서이다. 곧 좋은 대학을 나온 선생님이니 진료를 잘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 병원을 떠올리자마자 그 학생은 `아, 이제 됐다. 소화불량과 두통도 끝이다. 그 선생님이 분명히 나를 고쳐주실 거야'라는 확신을 갖고 기쁜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잔뜩 기대를 안고 병원에 갔는데 막상 그 병원 원장님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일단 원장님이 시종일관 입을 벌리지 않고 오물거리며 이야기를 해서 소리가 안 들리고 답답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원장님이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 등이 모두 “∼ 그런 것 같습니다” “∼ 같긴 한데…” “글쎄요. 아마 ∼ 일거에요”식으로 너무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의료 전문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어느 한 부분에서도 명쾌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확신을 주는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이 학생 입장에서는 의사가 “스트레스성 ○○○입니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지어드리는 약 잘 드시고 바쁘시더라도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자극적인 음식이나 커피 같은 카페인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요”식으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확실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길 원했던 것이다. 특히 병원 간판의 유명 대학 마크를 보고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을 기대하고 찾아간 만큼 의사의 오물오물 거리는 답답한 스피치와 “∼ 같긴 한데”식의 말투는 더욱 실망스러웠으리라 보여 진다.

또한 그 학생 성격 자체가 걱정이 많고 의존적인 편이라 “선생님, ∼는 괜찮을까요?” “∼증상은 왜 나타나는 걸까요?”식으로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던 상황에서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 일 것 같은데요” “∼ 같긴 한데요”식으로 확신을 주지 못했으니 커뮤니케이션 단절과 함께 의사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불신이 시작된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마 그 의사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 학생의 질문에 모두 열심히 대답을 해주었기에 성심 성의껏 진료를 잘 봐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어휘 표현 방식 (확신 없는 말투)으로 인해 실제 실력과는 무관하게 `실력 없는 의사' `잘 모르는 의사'로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의료 전문가다. 전문가(專門家)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영어로는 expert, specialist, professional, master 등으로 표현된다. 즉 마스터나 프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분야의 최고를 이야기한다. 곧 여기서 최고라 함은 그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 때 `출마설'로 이슈가 되었던 의사 출신 기업인이자 교수인 안철수씨는 21세기 전문가는, 전문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곧 과거에는 `전문 지식'만 있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했다면, 이제는 그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을 때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오늘의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좋은 지식이나 정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시기적절하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학생의 사례 역시 그렇다. 실제 그 학생이 만난 의사는 그 누구보다 의학적 지식이 깊고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지식'만 있을 뿐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여 `실력 없는 의사' `진료를 잘 못 보는 의사'로 평가된 것이다.


의사에 대한 믿음은 명확한 말투와 자신감 있는 모습에서 시작
`∼일것 같은데요' 식의 흐린 말투는 실력과 무관하게 평가절하돼
환자 외모·옷차림은 참고로만 이용하고 객관적 자세로 진료해야


특히 환자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비전문가들이다. 그러므로 초진 시 의사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은 실제 진단이나 처방보다는 의사의 사소한 말투나 어휘 표현 방식인 경우가 많다. 얼마나 신뢰감 있게 설명해 주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지, 확신을 갖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는지 등이 그 의사가 `진료 잘 보는 의사' `나를 고쳐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의사라는 의료 전문가를 넘어 이 세상 그 모든 전문가에게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변호사 역시 “∼ 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렇겠죠?” “∼ 할 것 같긴 한데” “∼ 될 것 같습니다”식의 명확하지 않은 말투는 실제 능력을 평가 절하시킨다. 그래서일까.

다음은 두 번째 학생의 사례다. 이 남학생은 겉모습만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범생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TV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처럼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귀를 뚫고 화장을 하고 다녀서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성실하고 학점도 잘 받는 모범적인 학생이다. 올 봄, 자동차 접촉 사고로 잠시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보수적인 의사 선생님이 자신을 불량 학생으로 생각하며 나일론 환자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정말 아파서 허리 통증을 호소해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정말 아픈 것 맞느냐고 반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니까. 특히 입원 기간이 학기 중이어서 수업 결석을 병결로 대체하기 위해 `의사 진단서'를 받으려고 하자 마치 학생이 그 동안 일부러 학교에 가기 싫어서 입원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성실하게 학교생활 잘하라고 훈계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을 나일론 환자로 취급한 것도 어이가 없지만 반말로 훈계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곧 이 원장님은 겉으로 보여 지는 외모로만 환자를 평가한 것이다. `이 학생은 머리가 노랗고 귀를 뚫었으니 왠지 놀기 좋아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학생이다.

그래서 별로 아프지 않은데 입원을 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 학생이 이학적 검사나 엑스레이 상으로 어떤 큰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의사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통증이나 병이 모두 검사 결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지만 환자는 정말 아픔을 느낄 수 있고 괴로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두 번째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필자 역시 반성을 하였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며 당장 눈에 보여 지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나 성실함을 가늠했던 적은 없는가 생각해보니 부끄러웠다. 특히 평소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사람을 평가했던 것을 떠올려 보니 우리사회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라고 외치면서도 실제 그 개성과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특히 의사가 진료 시 환자의 외모를 보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는 것은 무의식중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총체적인 이미지부터 눈빛, 얼굴 표정, 피부 톤, 옷차림은 물론 헤어 컬러나 소품 등 여러 가지로 환자를 가늠하고 판단하게 된다. 물론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안색이나 표정, 눈빛 등을 관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진단과 진료를 위한 참고 자료일 뿐 환자라는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의사는 이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환자를 차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진료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 당장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다고 해서, 말투나 어휘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현재 우리 시대가 루키즘(lookism) 시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스스로가 더욱 사람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가장 효과적인 진료가 시작 될 수 있다. 이번 한 주는 우리 병원 환자를 더욱 편견 없이 바라보고 따뜻하게 대하면 좋을 것 같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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