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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박사 1호 - 최명학
해부학박사 1호 - 최명학
  • 의사신문
  • 승인 2012.03.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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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초석 마련 및 세브란스 의대 중추적 역할

최명학(崔明鶴)
최명학(崔明鶴)은 1898년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중존리에서 최봉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3년 함흥영신보통학교, 1917년 함흥영생학교를 졸업후 함흥제혜의원 서기로 근무하였다. 1922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에 졸업하고 해부학 교실 조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졸업 후 2년간 해부학 강의를 담당하였으며 1928년 일본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해부학교실 연구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오가와(小川) 교수의 지도 하에 태생학 및 조직학을 연구하였다. 1930년 귀국하여 모교의 강사로 취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조교수로 승진하였다.

1932년에는 그가 제출한 논문 “Determination of ear and side specificity of the ear region ectoderm in amphibian embryo”가 인정되어 교토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로서 그는 한국인 최초의 해부학 박사가 되었다.

최명학은 귀국 후에도 발생학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체질인류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당시의 시대상황과는 다르게 여러 편의 영어논문을 일본의 영문잡지 “Folia Anatomica Japonica”에 발표하였다. 최명학은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연구과의 일원으로서 병리의 윤일선 등과 함께 학교의 연구 활동을 주도하였다. 1933년 교수로 승진되었다. 선생은 여러번 일본해부학회에서 그의 연구업적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다년간의 업적이 인정되어 1934년에는 일본해부학회의 평의원으로 추대되었다.

최명학은 연구 이외 에도 학교의 여러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교우회 간사, 의학구락부 서기, 학교의 생도감(현재의 학생과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세브란스 후원회 이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였다.

1934년 갑자기 학교를 사임하게 되었으며 사임 후 해부학교실은 정일천이 맡게되었다. 사임 후 최명학은 함흥에서 최명학외과의원을 개원하다가 광복 직후 함흥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를 하였다. 1948년에는 함흥의학대학장을 역임하였으며 1953년경까지 의학과학원 원사로 있었으나 그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집필 : 황의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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