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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이야기에 반응하며 지적 수준·특성 맞게 소통
환자 이야기에 반응하며 지적 수준·특성 맞게 소통
  • 의사신문
  • 승인 2012.02.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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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47〉

■진료 시 힘든 상황 2

지난 칼럼에 이어 이번 칼럼 역시 진료 시 환자와 소통이 힘든 상황들에 대해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반복 강조하지만 효과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각 상황에 맞는 소통 방법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필자에게 교육받던 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선생님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니 좋으시겠어요. 기본적으로 이해력이 높은 똑똑한 사람들이니 말귀도 빨리 빨리 알아듣잖아요.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소통이 원활하니 얼마나 좋으세요. 제가 매일 같이 만나는 환자들 중에는 이해력이 낮은 환자들이 많아요.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지는 환자들을 볼 때면 답답해서 가끔은 속이 터진답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료가 많이 힘드실 것 같아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선생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일반 환자들과 똑같이 설명하시는 것이 아쉬웠다. 비슷한 증상이라고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똑같이 설명해주는 것은 효과적인 진료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환자(communication receiver)를 탓하기 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사(communication sender) 쪽에서 먼저 메시지의 양과 수준, 전달 방식을 바꾸면 소통이 훨씬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진료 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의사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환자라면 그저 답답하게 생각하며 일반적인 환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할 것이 아니라 설명방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 즉 의학적 지식수준이 낮거나 기본적으로 설명에 대한 이해수준이 떨어지는 환자에게는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환자의 언어)로 핵심적인 사항만 짧고 간결하게 설명해야 한다. 특히 의학용어나 전문적인 치료 방법은 일상용어(일상의 예)로 바꿔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그림이나 사진, 모형물 등을 사용하면 한층 더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의사항은 설명만 하지 말고 따로 메모해서 주는 것이 좋다. 또 환자가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충분한 답변을 주었음에도)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답변 자체를 환자가 처음 질문했던 문장이나 어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환자들 중에는 자신과 의사가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방식이 달라서 의사의 답변을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적 수준이 낮거나 이해수준이 떨어지는 환자는 이야기(질문이나 설명)를 할 때 가능하면 핵심을 앞에 두는 두괄식으로 결론을 명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만약 치료나 약의 복용에 있어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약의 장점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의사가 권하는 방향으로 좀 더 부각시켜서(결론을 어느 정도 명시하며) 설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일례로 환자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수술이 있다면 수술의 장점을 단점보다 훨씬 부각시켜서 환자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장점과 단점을 비슷한 비율로 전달할 경우에는 `부정성의 효과(negativity Effect)'로 인해 단점을 더 기억하게 만들어 치료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적 수준이 높은 환자, 의사의 설명에 대한 이해도가 빠른 환자에게는 정반대다. 설명은 차근차근 원인과 결과, 근거, 사례 등을 충분히 제시하는 미괄식이 좋고 결론을 직접 명시하는 것보다는 이미 환자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결론을 환자에게 유보(환자 스스로 최종 판단을 내리도록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것)하는 것이 좋다. 또 치료나 약물 복용 등에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두 부분을 모두 충분하게 설명(양방향 제시) 해주는 것이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실제 필자와 친한 성형외과 의사는 다른 병원에서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 수술 후의 부작용까지도 모두 솔직히 이야기해주어 오히려 환자들에게 신뢰를 높이고 있다. 물론 그 의사가 주로 만나는 환자는 비교적 지적 수준인 높은 여성들이 많다. 곧 환자들 스스로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단점일지라도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력 낮은 환자, 어휘 수준 낮추고 핵심만 짧고 간결하게 설명
 지적 수준 높을 땐, 미괄식 설명에 환자에게 판단 내리도록 유도
 감정조절 못하는 경우에는 재촉하지 말고 `반영·공감 기법' 사용



한편 진료 중에 환자가 눈물을 보이며 슬퍼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경우 역시 참 진료가 힘든 경우다. 사실 이럴 때는 환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감정을 조율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진료가 바쁠지라도 재촉하거나 진료를 빠르게 진행시키지 말고 잠시라도 침묵하며 환자에게 시간을 주길 바란다. 그 다음 환자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반영 기법(“많이 힘드시죠?” “걱정이 많이 되시죠?”)과 공감 기법(“네. 저도 그 마음 너무 잘 압니다”)을 사용하면서 진료를 진행시키면 효과적이다. 만약 환자가 너무 격하게 울거나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라면 무조건 진료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환자기 잠시 진료실 밖으로 나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것이 좋다. 환자가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뭐 그런 거 갖고 우세요?”라든가 “에이, 벌써부터 마음 약해지면 안돼요. 당장 눈물을 그치세요”식으로 훈계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의사가 생각할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라도 환자가 눈물을 흘린다면 환자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환자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모두 자기 병이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 명 아니 수 백 명의 당뇨 환자를 보는 내분비내과 의사에게는 혈당이 높은 환자가 대수롭지 않은 환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뇨 환자를 본 적이 없는 무지한 환자는 의사에게 `당뇨'라는 진단을 받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는 의사 입장이 아닌 환자 입장에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가 친근하고 편하기 보다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의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거짓말을 하거나 솔직한 심정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된다. 실제로는 약을 잘 먹지 못하면서도 잘 먹는다고 대답하거나 의사가 권하는 치료에 마음이 없으면서도 거절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간호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환자에게 섭섭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료 때부터 환자가 의사에게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자를 심적으로 편하게 해주면서 어떠한 부담도 주지 말아야 한다.

만약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나 치료라서 부담을 주었다면 아예 환자의 마음 자체가 바뀔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참고로 진료 시 의사에게는 받겠다고 했던 치료를 간호사에게는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면 가능하면 환자와 추후 다시 면담 기회를 가져서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를 파악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다른 말을 하는 환자 같이 의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여 이야기하는 환자들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환자의 비언어를 주시해야 한다. 비언어는 언어보다 진실을 숨기기가 어려운 법이다. 특히 초 단위로 변하는 얼굴의 미세표정들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환자가 이야기할 때 표정이나 눈빛, 목소리 톤이나 어조 등 비언어들을 관찰하여 진심을 파악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관심을 갖는 만큼 환자 역시 의사에게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그저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진료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바쁜 상황이더라도 환자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갖고 환자가 힘들어하는 점은 없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환자의 표정과 눈빛 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일지라도 진료 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으면 절대로 환자의 심증을 파악할 수 없다.

흔히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진료를 `3분 진료'라고 부른다. 아픈 몸으로 기본 한 시간 이상을 힘들게 기다리며 의사를 만나게 된 환자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 역시도 바쁘고 힘들더라도 환자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3분 진료가 30분 진료 이상으로 생각될 수 있도록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한다. 환자의 이야기에 반응하며 환자의 지적 수준이나 특성에 맞춰 소통하는 것이다. 실제 30분 아니 1시간 이상의 진료를 볼지라도 의사가 환자와 이야기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무성의한 모습을 보인다면 3분 진료보다도 진료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 훌륭한 의사는 병을 고치는 의료 전문가인 동시에 훌륭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다. 이번 한 주는 힘든 진료 상황에서도 환자와 원활히 소통 잘 하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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