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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병원행정전문가 - 홍준식
최초의 병원행정전문가 - 홍준식
  • 의사신문
  • 승인 2012.02.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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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서 병원행정 선진화 구축·사회보험 개선

홍준식(洪準植)
중산(重山) 홍준식(洪準植)은 193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교수 홍승국의 장남으로 서대문구 신촌동 10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출생한 위치는 현재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곳인데 당시에는 연희전문학교 관사가 있었다. 경복고등학교를 1948년에 졸업하고 세브란스의과대학(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재학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력을 인정받아 졸업 직후 도미하여 세인트루이스 디폴병원(De Paul Hospital)에서 산부인과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1959년에 귀국하여 모교 산부인과 전임강사로 진료와 교육을 담당하면서 당시 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을 종종 방문하던 유나이티드 보드(United Board)와 차이나메디칼보드(China Medical Board) 자문관들의 보좌관과 통역관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의 두 기관은 한국에 의료지원을 하였던 재단인데, 자문관들은 세브란스병원이 서울역 앞에서 신촌캠퍼스로 옮기게 되면 병원행정전문가가 필요할 터이므로 미국에서 수련을 받은 연세의대 현직 중에서 젊은 사람을 뽑아서 병원행정을 공부시키기로 하였다. 커런(Jean Curran)자문관이 홍준식을 적극 추천하여 차이나메디칼보드의 장학금으로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병원행정학을 전공하여 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병원에서 병원행정 수련 과정을 마친 후 귀국하였다.

홍준식은 32세에 세브란스병원 부원장에 임명받았고, 대한병원협회 이사로 선임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수련병원심사기준을 만드는데 참여하였다.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부원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1965년에 다시 도미하여 버진아이랜드(Virgin Island)에서 연방정부기구인 의료보험국장으로 2년간 일하면서 노령자를 위한 사회보험방식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호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 법령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 후 홍준식은 뉴욕의 베스이스라엘병원(Beth Israel Hospital) 부원장직을 거쳐서 킹스카운티병원(King's County Hospital) 원장으로 일하였다.

한편 홍준식은 당시 미국에서 가정의학과(family medicine)가 새로운 전문과목으로 창설되어 미국의학협회(AMA)로부터 인정받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 후 1976년에 홍준식은 가정의학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부르클린(Brooklin)에 본원을 둔 가톨릭의료원(Catholic Medical Center) 가정의학과장 겸 레지덴트프로그램 책임자로서 다시 본연의 임상의사로 돌아갔다.

가톨릭의료원은 산하에 종합병원 5개가 있는데 첫 1년은 본부(Mary Immaculate Hospital)에서 일하였으나, 병원행정 경력과 배경이 참작되어 그 후 산하병원 5개를 관리하는 중앙사무실에서 운영위원회 위원장 겸 5개 병원 외래진료부원장 및 가정의학과 과장으로 15년 이상 일하였다.

가톨릭의료원에 근무하는 중 홍준식은 지역사회의학(community medicine)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지역 빈민촌에 보건소를 12개 설치하여 극빈자들의 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 섰으며 동시에 가정의학과 의사가 마약중독자 치료에 책임을 가지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아울러 그는 한국인으로서 미국 가정의학 영역에 임상의학과 예방의학을 연계한 특수한 커리큐럼을 작성하여 미국의학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은 바 있다.

홍준식을 이야기할 때 늘 입에 오르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어느 미국인 여자 관광객이 우리나라 여행 중 병이 나서 세브란스에 입원하였는데, 미국에 있는 아들이 김포공항에 와서 시발택시를 타고 세브란스병원 입원실 입구에 내려 달러로 택시값을 지불하려 하였는 바, 운전기사는 한국 돈을 내라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을 부원장실에서 유리창을 통하여 보고 달려가서 택시요금을 대신 지불해 주고 어머니의 병실로 안내 해 주었다. 병세가 호전되어 아들과 같이 귀국한 관광객은 감사의 편지와 함께 네브라스카주에 있는 땅 문서를 홍준식에게 기증하여 보내왔다. 경제적 가치는 별로 없는 땅이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항상 미소를 머금고 살아온 홍준식은 소아과의사인 민인숙과 결혼하여 1녀 1남을 두었으며, 1997년에 가톨릭의료원에서 은퇴하여 뉴욕에 살고 있다. 아들 홍원희(Roy Hong)는 콜럼비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팔로알토의료재단(Palo Alto Medical Foundation)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집필 : 유승흠(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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