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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재즈 모음곡 제2번 작품번호 50b, 왈츠 제2번
쇼스타코비치 재즈 모음곡 제2번 작품번호 50b, 왈츠 제2번
  • 의사신문
  • 승인 2012.02.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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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군대의 왈츠 선율에 감춰진 재즈

쇼스타코비치는 학창시절 구소련을 방문한 서방세계의 재즈 콘서트에 종종 참석할 기회를 갖게 된 후 재즈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즈가 공산주의였던 구소련에 여과 없이 투과되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부르주아적인 문화와 자본주의 퇴폐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치 없는 예술로 적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1930년 구소련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재즈 연주자인 레오니드 유티오소프와 그의 악단 `Tea Jazz' 멤버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재즈를 연주한다기보다는 경음악을 연주하는 정도 실력의 악단으로 그리 음악성이 높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구소련에서는 가장 유명한 재즈음악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쇼스타코비치는 재즈에 대한 호기심으로 기존의 재즈어법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킨 자신만의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1934년 구소련의 재즈를 대중적 카페음악 전문 장르로 발전시키기 위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후 본격적으로 재즈 모음곡 제1번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4년 후 빅토르 크누세비치스키가 지휘하는 새로 구성된 재즈국립악단을 위해 재즈 모음곡 제2번을 작곡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 출신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9세 때부터 피아노의 기초를 배운 뒤, 러시아혁명 후인 1919년에는 페트로그라드음악원에 입학하여 어머니의 스승이었던 로자노바와 니콜라예프에게 피아노를, 슈타인베르크와 글라주노프에게 작곡을 배웠다. 졸업 작품인 〈제1교향곡〉은 구소련뿐 아니라 유럽악단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제1회 쇼팽 콩쿠르에서 2등으로 입상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도 인정받게 된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럽의 새로운 경향의 음악, 즉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와 알반 베르크의 표현주의 작품들이 한창 유행하였고, 쇼스타코비치는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927년 공산주의 10월 혁명을 기념한 교향곡 제2번과 1929년 `메이데이’를 위한 교향곡 제3번을 발표하면서 소련의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1934년 전위적인 기법으로 완성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부인〉으로 서구 유럽에서는 호평을 받으나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서는 철저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그는 심한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 해에 재즈모음곡 제1번은 완성되었다. 그 후 1937년 교향곡 제5번의 초연이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여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게 된다. 이즈음에 재즈모음곡 제2번이 발표되었다. 구소련 공산체제의 냉철한 견제와 자신의 음악세계와의 끊어질 듯한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자신의 색채가 듬뿍 담긴 재즈 왈츠 곡을 완성할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면서도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 모음곡들 모두에서 쇼스타코비치만의 재즈에서 볼 수 있는 그만의 멋스러움과 러시아적인 우수가 담긴 듯한 서정적인 주제 선율을 유머러스하게 왈츠라는 형식에 대입하여 그리고 있지만 서양 재즈기법에서 볼 때 재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에서는 미국의 팝음악이나 댄스음악도 모두 `재즈’로 분류되었다.

이는 차라리 당시 찰리 채플린의 영화음악 같은 경음악 기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재즈모음곡 제1번이 1920년대의 퇴폐와 번화함을 그만의 고아하게 우수에 찬 선율을 섞어 그리고 있는 반면 모음곡 제2번은 요한 슈트라우스 풍 왈츠 선율에 구소련 붉은 군대의 변형된 왈츠를 연상케 하면서 그 서정이 오히려 감추어진 슬픔의 모습으로 더욱 눈부시게 부각되고 있다.

이 재즈 모음곡의 영화음악적인 요소 때문에 영화들에서 이 곡을 많이 인용하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니콜 키드먼이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남자(톰 크루즈)와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재즈모음곡 제2번 중 왈츠 제2번이 흐른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두 대학생의 순정을 그린 국내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도 역시 이 곡이 나온다.

■ 들을만한 음반 : 리카르도 샤이(지휘), 로얄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Decca, 1992]; 우크라이나 국립관현악단[Brilliant, 1985]; 드미트리 야블론스키(지휘), 러시아 국립관현악단[Naxos, 2001]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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