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학술 영화 제작자, 전립선 전도사 - 권성원
의학 학술 영화 제작자, 전립선 전도사 - 권성원
  • 의사신문
  • 승인 2012.01.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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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뇨기과 레이저 침습수술 및 의학 전자출판 개척

권성원(權誠遠)
오줌학, 외길, 그 한길을 평생 동안 천착해온 외골수 비뇨기과 의사. 여섯 해 전, 정년 후 학교 문을 나선 지금도 한반도 남반(南半), 구석구석을 돌고 돌며 전립선 변고를 찾아 골반의 담연(潭淵)을 헤매는 권성원. 사람들은 그를 전립선 전도사라고 부른다.

권성원(權誠遠)은 1940년 이천(伊川)에서 태어났다. 그 때 이천은 38선 이북에 위치한 이북 치하의 강원도 땅이었다. 충남 대덕군 출신인 부친 권용설(權容卨)이 당시 철원군 금융 조합 이사로 봉직했기 때문이다. 1946년 전 가족이 월남, 공산 압제를 벗어난다. 그리고 잇달아 터진 한국전쟁 등 사회적 격동에 떠밀려 선생은 서울, 대전, 부산 등 초등학교 4곳, 중학교 1곳, 고등학교 2곳을 전전하며 간신히 학연의 명맥을 이어간 전형적인 피난살이 학력을 소지하게 된다.

1965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선생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학교실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1973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비뇨기과학교실 전임강사로 교수 생활을 개시, 그 후 32년 동안 학생 및 전공의 교육, 학문 탐구, 환자 진료에 열정과 헌신의 끈을 이어갔다.

1976년 선생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옮겼다. 당시 여성의료기관의 비뇨기과학교실은 그야말로 후미진 변방이었다. 선생은 고독한 사명감, 남다른 집념, 선구적 혜안으로 단 시일 내에 교실을 개간, 육성하여 융성의 기반을 닦았다.

선생은 잠시도 정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분주한 와중에서도 일본대 의학부(1979), 독일 Luebeck 의대(1985), 스페인 Barcellona 의대(1985)의 연구 교수 그리고 140여 편의 학술 논문 등 다채로운 학술 활동과 함께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다.

선생은 의료공학 분야에도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1987부터 2년간 중외제약과 제휴, 경요도 전립선 절제술에 필수적인 관류액 및 관류시스템(Kwon's irrigating system)을 개발하고, 내시경 시술용 수술대(Kwon's table) 제작을 선도함으로써 의료장비 국산화와 국내 전립선수술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비뇨기과 임상에 레이저를 도입하여 레이저를 이용한 덜 침습적인 비뇨기과 수술을 주도하였고 1999년부터 2년간 대한의학레이저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여러 공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선생의 업적은 의학에 영화를 접목시킨 영상비뇨기과학(video urology)의 개척자요 선구자라는 사실이다. 내시경을 통해 인체 내부의 사실적 구조를 보여주고 쇄석기(ESWL)의 충격파가 신장 내 결석을 직접 파괴하는 모습, 레이저 빔이 방광암을 소작, 제거하는 장면을 안방 TV 화면에 직접 방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젊은 시절의 꿈이었던 영화 감독 대신 의학적 진실을 영화 화면에 담아내는 의학예술(medical arts) 감독이 되었다.

1984년이래 30여 편의 의학영화를 제작하였고 특히 내시경 수술 과정의 동영상 교재는 후학의 교육 방식을 완전히 뒤바꾼 계기가 되어 오늘 날 IT 동영상 교육시대의 문을 열었다. 1996년까지 제작된 20여 편의 의학영화를 비디오 CD로 변환시켜 최초의 전자출판이라는 족적을 남겼고, 일반인에게 비뇨기과를 제대로 인식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2005년 정년퇴임 후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환자 진료에 간단 없는 주행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기다리며 맞이한 환자 대신 직접 찾아가 만난 환자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2001년 선생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한국전립선관리협회는 내실이 차고 규모가 커졌다. 전립선 질환 및 치료의 사각 지대인 전국의 도서, 벽지를 오가면서 일류 대학 병원 수준의 진료를 베풀고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도서벽지를 찾아 총 18개 지역을 돌며 7019명의 전립선 환자에게 최신 비뇨기과 진료를 하였고, 매주 목요일 서울 및 근교의 보건소를 찾아 245회 3만5780명에게 진료를 베풀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각계각층으로부터 기부와 지원을 받아 그 동안 총 4만3000여명에게 무료진료 혜택을 베풀었고 그 시혜액수만도 100억에 이른다. 선생은 이와 같은 공적으로 2005년 보건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였다. 그래서인지 어느 방송은 그를 전립선 전도사라고 불렀고, 어느 신문은 그를 전립선 아버지라고 썼다.

선생의 저서에는 `비뇨기과학'(고려의학, 1991), `신장 및 비뇨기과 초음파 의학'(역서, 태평기획, 1997) `오줌학 이야기'(엠디 저널) 등이 있다.

집필 : 정정만(세우미비뇨기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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