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특허 248개를 등록한 - 윤인배
발명특허 248개를 등록한 - 윤인배
  • 의사신문
  • 승인 2012.01.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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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산부인과의사로 의료기기 발명·개발 큰 기여

윤인배(尹仁培)
윤인배(尹仁培)는 2009년 미국 뉴저지에서 있었던 제21차 미주 세브란스동창회에서 `자랑스런 세브란스 동창' 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소감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니 많은 (의료기기) 발명품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내가 발명한 것을 환자나 의사들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향상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러한 강한 믿음이 나로 하여금 끈기 있게 연구에 몰두 할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1972년도에 소위 `Yoon Falope Ring'으로 명명된 복강경을 통한 나팔관 결찰 링(Ring)을 개발한 이후 2003년까지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기구발명 특허가 248개(미국 226, 호주14, 영국 2, 캐나다 2, 일본 1, 한국3)에 이른다. 도대체 의사인지 발명가인지 혼돈이 올 뿐이다.
 
윤인배는 1936년 윤화정과 김연득의 3남 1녀 중 막내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 경제과와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사업가 아버지와 세브란스간호학교를 나온 어머니 그리고 두 형들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누나와 단둘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 창신초등학교와 아버지가 설립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경신중학을 다니다가 한국전쟁 후 서울 대광고를 2등으로 졸업하고 연세의대에 입학하여 1961년에 의학사학위를 받았다.
 
해군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누구보다도 언어장벽에 크게 부딪힌 윤인배는 백인사회에서 의사로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한 고민이 아마도 미국의사들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발명왕 윤인배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외과 수련의를 하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다른 의사 보조 없이 수술할 수 있는 Self-Retractor의 prototype을 고안하면서 서서히 발명에 대한 꿈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개발된 Laparoscope를 이용한 나팔관 전기소작법을 잠깐 동안 개업해 많은 예를 혼자서 시술하면서 미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72년에 한국 KBS에서 윤인배의 이러한 발명가적인 활동을 한국에 소개하였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족계획이 활발히 진행되던 때이라 윤인배의 이러한 노력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것으로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전기소작법으로 인한 부작용, 합병증을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Elastic silastic ring을 개발하였다. 본인 스스로가 NIH와 AID등을 찾아다니면서 자기개발계획을 설명하는 열정에 미국 의료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73년 37세 때 존스홉킨스대학의 조교수로 초빙되어 Laparoscopic Sterilization Clinic 소장으로 발령받았다. 1975년 AID 인구문제연구소장(R.T. Ravenhalt)이 UPI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Yoon Falope Ring 기술이 가장 안전한 나팔관 결찰술이라고 소개하여 윤인배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같은 해에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석류장'을 수여받았고 전 세계적인 학술행사에 초청연자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학술활동은 1983년까지 13편이 발표되었고 세계적인 학회에서 32차례나 특강연자로 초청되었으며 미국 산부인과학회 정회원은 물론 미국산부인과학회 자문위원, 미국 메릴랜드, 발티모어 지역 산부인과 학회 등에서 큰 어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창조적사고협회' 공로패도 수여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1998)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동창상(1998), 대광고등학교 명예동창상(1998) 등을 받았다.
 
1990년에는 의료기 전문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윤인배가 개발한 모든 기기를 통합 관리하는 Ethicon Endo-Surgery라는 회사를 만들어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에 가일층 힘을 쏟게 되었다.
 
1998년에는 윤인배가 모교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여 내시경 전문센터(I. B. Yoon Multispecialty Endoscopic Research & Training Center)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졸업 45주년 재상봉행사에서 또 100만 달러를 기증하면서 새로운 연구기금을 희사하였다.
 
윤인배가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이대 약대를 나온 부인(홍경주)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63년에 새문안교회에서 결혼하고 다음해에 도미하여 1남 2녀를 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들과 딸 하나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나와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
 
집필 : 김병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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