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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12.01.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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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임 <중구 동호의원장, 전 이화의대 동창회장>

김태임 원장
“엄마, 어떻케, 비가 많이 오네.”

시집가는 날 아침 큰 딸 경원이가 병원에서 진료중인 나에게 전화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날씨를 어쩌라고?' 은근히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오후에는 개인데”

“일기 예보에 그렇대요?”

“아니, 엄마가 하나님께 전화해서 여쭈어 보았거든, 우리 예쁜이 시집가는 좋은 날인데, 설마.”

“엄마는 엉뚱하게” 하면서도 목소리가 훨씬 밝아졌다.

실제로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개이면서 딸의 결혼을 축하 하는 듯이 푸른 하늘에 화창한 날씨였다.

의료봉사 모임을 같이 하면서 친구로서 사귀다가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져 골 때리게 주판알을 튕길 필요도 없었고, 예단이나 다른 준비도 가볍게 넘어 가니 마음이 편했다. 사위도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고 시어른도 점잖으신 분이라 안심이 되었다. 레지던트 과정이어서 정신없이 바쁠 때라 웨딩드레스 고르는데 시간도 많이 할애하기 힘들었고 피부 관리도 제대로 받지 못해 화장이 들뜬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러웠는데 신랑 신부의 얼굴이 둥근 보름달처럼 환하고 빛이 났다.

미국에서 나는 레지던트 과정으로, 남편은 박사 학위공부로 바쁜 중에 태어난 딸에게 충분한 사랑과 시간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늘 아쉬웠고 미안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애를 어르고 달랠 때 마다 “우리 경원이 커서 공부 잘 해서 의사 되어야지”하고 거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딸애는 마치 의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초지일관 그 뜻을 바꾸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엄살이 심한 편이고 욕심도 있는 성격이라 시험 때 점수 나쁘게 나올까 봐 성적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 안달을 하는 바람에 우리를 은근히 걱정시켰다.

그리하여 경원이가 의대를 졸업했을 때 나와 남편은 휴우 드디어 끝이 났구나, 크나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축배를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엉뚱한 문제가 터졌다. 인턴을 할 때 하필 처음에 걸린 과가 종양내과였다. 인턴의 일은 이른 새벽에 환자들의 피를 뽑거나 정맥 주사를 놓는 일로 시작된다.

암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 입원 환자로 영양부족으로 인한 부종으로 손이 많이 부어있고 혈관을 이미 써 버린 경우가 많아 혈관 찾기가 무척 힘이 든다. 3월 새 학기가 되어 인턴들이 바뀌는 걸 잘 아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긴 투병기간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짜증이 나는 판에 초짜 인턴이 버벅거리면서 혈관을 놓쳐 다시 찌르게 되면 툴툴대며 불평하고 인상을 팍팍 쓰거나 한숨을 푹푹 쉬곤 한다.

가뜩이나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며 새 가슴인 딸은 지레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자신있게 정맥주사를 놓을 수 없었나보다. 병원에 안부 전화를 걸면 주사 스트레스 때문에 죽겠다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울기까지 하니 부모인 우리는 그야말로 애간장이 끓었다. 그러다보니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 내야 만족하는 딸아이가 밥도 부실하게 먹고 잠도 잘 못 자면서 보름 만에 체중이 9kg이나 빠지더니 종내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며 일 년 쉬었다 다시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번에는 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일을 어찌 할꼬 이런 저런 고민하던 중 남편이 신통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번 주말이 비번이라 집에 오니 미리 주사기를 준비했다가 우리가 모르모트가 되어 정맥 주사에 대한 생체 연습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마음이 급하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썩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떻케 아빠, 엄마를 찔러”

망설이는 딸에게 주사 놓는 강의를 다시 하고 실전에 돌입했다. 부들부들 손을 떠는 딸에게

“망설이지 말고 단번에 콱 찔러야 돼.”

“부모라고 인정사정 보면 안 된다니까”라고 야무지게 코치하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살벌하다. 옆에 있던 둘째 딸과 아들이 눈이 화등잔만 해져 후닥닥 자기 방으로 도망간다. 아마 자기네들 상대로 연습하자고 덤빌까 봐 겁이 난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수한 연습을 거쳐 제법 혈관을 잘 찾아내게 되었다. 남편이 남자라 그런지 혈관이 도드라져 찾기가 쉬워 주로 연습대상이 되었는데, 안 아플 리가 없겠지만 눈꼽 만큼도 아프지 않다고 연신 딸을 안심시켰다. 손등, 팔, 발등까지 바늘 자국으로 시퍼렇게 자주색으로 울긋불긋 멍이 들었지만 점차 자신을 갖고 익숙해지는 딸을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와 남편의 주사 자국으로 멍든 손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병원에 입원했었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침을 튕기면서 코믹하게 상황을 설명하니 모두들 깜짝 놀라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경원이는 아빠, 엄마를 상대로 정맥 주사 실습 후 위기상황을 무사히 넘겼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위중하거나 응급환자가 많은 내과 전공을 피하고 피부과를 택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나 자신도 딸의 성격을 감안하며 그 결정을 존중해 주고 밀어 주었다. 경원이는 피부과 전공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개업의가 되었다. 필요하지 않은 치료는 필요하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는 원칙주의자이고 나름대로 성실하고 세심하게 치료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뿌듯하다.

이제 딸은 일곱 살짜리 딸과 세 살 박이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를 닮았는지 책을 좋아하는 제 딸과 같이 동화책도 읽고 뮤지칼 공연도 가고 미술관에서 그림도 감상한다. 시댁도 자주 찾고 시어른과 여행도 같이 간다. 안사돈은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자주 만나고 여행도 간다고 하면 친구들이 상당히 부러워한다고 기분 좋아하곤 했다. 경원이네 가족은 시간 여유 있는 대로 우리 집을 찾고 나는 아이들 좋아하는 스파게티, 핫 포테이토 샐러드, 야채 수프 등을 만들어 주면 맛이 있게 먹곤 한다. 양재천 산책도 같이 하고 손주들은 할아버지 물 수제비 뜨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한다. 돌아오는 길에 하겐다츠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주면 최고로 행복한 날이 된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직장을 가진 엄마로 자녀를 키우며 겪었던 어려웠던 일들이 희미한 옛 영화처럼 지나간다. 경원이가 엄마와 같은 길을 가고 있고 비슷한 일들을 겪을 터 인데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실 내가 걱정해 보았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는가? 직장 일이나 가정 일에 너무 압도되지 말고 순리대로 마음에 여유를 갖고 차분히 해결해 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김태임 <중구 동호의원장, 전 이화의대 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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