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해외의료선교에 전념 - 강원희
30년간 해외의료선교에 전념 - 강원희
  • 의사신문
  • 승인 2012.01.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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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개원의 삶 접고 해외 의료선교에 한평생

강원희(姜元熙)
강원희(姜元熙)는 첫 해외선교지로 네팔을 택했다. 1982년이었다. 안나푸르나 정복의 길목 포카라에서 정부병원 응급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5일간의 복통을 호소하고 내원한 60세 시골할아버지는 범복막염이었다. 상태가 너무 위독하여 큰 도시로 이송이 불가능하여 개복하기로 하였다. 피 2병을 준비시키고 개복결과 충수돌기염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이었다.

수술은 깨끗이 끝냈으나 환자는 쇼크 상태로 빠졌다. 준비된 피는 없었고 두 아들에게 헌혈을 부탁하였으나 자기 피를 뽑으면 죽는 줄 알고 거절당했다. 강원희는 검사실로 뛰어가 혈액형검사를 하여보니 다행히 환자피와 동일한 혈액형이었다. 지체 없이 본인이 피 두병을 뽑아 자기가 수술한 환자에게 수혈을 하였다. 이러한 사건 이후 그 지역에 와있던 `한국장미회병원'이 현지인들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강원희는 광복 전까지 함경북도 성진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일본을 상대로 무역업을, 할아버지는 만주를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집안에서 1936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장로로 일하면서 빈민구호 사업에 열중한 덕택으로 광복 후 친일파로 몰린 일본무역상 아버지도 면죄부를 받았다. 한국전쟁으로 UN군과 국군이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밀고 왔을 무렵 강원희 집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일등상사의 호의로 군 트럭 편에 흥남까지 내려왔고 아버지는 기차로, 어머니와 동생들은 따로 작은 어선을 타고 서호까지 왔으나 놀랍게도 부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이 극적인 상봉을 할 수 있었다.

강원희는 군부대에 있다가 6개월 후에 거제도에서 온가족이 만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곳에서 대광고 분교에 입학하여 1년 후에 서울로 와서 대광고를 졸업하게 되었다. 고교졸업과 동시에 그는 육사(장군이 되어 나라를 구하기 위해)와 신학교(불쌍한 동포들을 돌보아주기 위해)를 선택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연세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의대 졸업 후, 바로 전주예수병원에서 전공의(외과)를 마치고, 육군군의관으로 4년간 복무하였다.

제대 후 강원도 속초로 가서 대동의원을 개원하였다. 어느 날 강원희는 갑자기 “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인생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존재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외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우리의 선열들이 얼마나 무서운 고초를 당했고 한국전쟁 때 UN의 도움으로 풍전등화 같았던 한국이 새 힘을 얻고 일어서게 되었다. 그에 앞서 1880년대 우리나라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사들이 와서 우리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나는 빚더미에 안주하고 있음을 보았고 이를 어찌할고 하다가 `나도 선교사로'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속초에서 개업이 아주 잘 되고 있던 1972∼73년이었다. 이러한 결심은 드디어 1982년 의료선교사로 첫 발을 내디디게 된다.

강원희는 그 때 결심이 섰다. 나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복음의 최대강국이 되었으면 하는 약속을 하나님께 하였다. 비록 49세에 선교사로 첫출발을 하였으나 네팔선교 3회(1982∼86, 1995∼99, 2010∼현재), 방글라데시(1987∼91), 스리랑카(1991∼95), 에티오피아(2002∼09)로 햇수로 30년째다. 중간에 선교부의 명령으로 안동성소병원장(1999∼2002)으로 근무한 바도 있다. 30년의 해외의료선교사 생활에서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강원희의 손으로 생명을 건진 수많은 현지인들을 생각하면 지나간 고초보다 기쁨이 몇 배 또는 몇 십 배 더함을 느끼면서 오늘도 네팔 산골에서 자선의 손길은 쉬지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는 이미 1977년에 속초중앙교회에서 장로로 장립되었고, 이러한 의료선교활동은 국내에서도 알려져 1990년에는 대한의사협회의 `보령의료봉사상'을, 1996년에 일가상(사회공익부문), 2000년에는 연세의학대상(봉사부문), 2002년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 2003년에는 MBC사회봉사대상을 수상하였다.

여러 나라를 더구나 후진국들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언어, 문화,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이제는 몸에 배어있다. 본인은 85세까지는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꼭 그렇게 되기를 빌겠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번 허락된 인생을 강원희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아무나 그렇게 될 수가 없으니까 부러울 뿐이다.

집필 : 김병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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