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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홍순기 이사장
한국성폭력상담소 홍순기 이사장
  • 표혜미 기자
  • 승인 2011.12.2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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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에 산다, 신 인술의 현장 2012

“성폭력 제로 세상 만들기 여정에 많은 동참을”

홍순기 이사장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해 봤을까…? 성범죄는 해가 거듭 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능적이면서 더 흉악해졌고,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범 방지에 소홀한 현행 시스템과 처벌에만 급급하고, 아동들에 대한 무관심과 보호에 대한 의식부족은 피해자들 고통의 제일 큰 원인이다”

끔찍하고 아찔한 사회적 충격의 대명사 성폭력.

성폭력은 반드시 근절돼야 할 사회악이라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낯설지 않다. 잊을 만하면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벌어진 성폭력 사건은 매번 사회를 충격으로 휩싸이게 하고, 이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되새김하며 또 다른 상처와 고통을 떠안아야 한다.

`성폭력 제로 사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꿈꾸는 세상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된 듯 하지만 남성의 성은 여성의 것과 다르다며 여성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가부장제의 통념과 편견은 여전하다고 지적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홍순기 이사장을 만났다.

홍 이사장은 “성폭력은 다른 어떤 폭력보다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준다”고 한다. 특히 어린시절의 성폭력 피해는 성장과정 단계에서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깨진 유리다', `이미 깨졌기 때문에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이런 생각들. 성폭력 피해를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사회의 몹쓸 낙인”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홍 이사장은 1984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한국보훈병원에 재직하며 거듭난 실력파로 1993년 공동개원의 산부인과의사로서 만족스러운 의사생활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3년 임기로 2006년부터 두 번째 재임 중이다.

홍 이사장은 “1999년 당시 이사장을 맡았던 박금자 선생님(산부인과)의 권유로 이사회에 참여하게 됐고, 산부인과의사로서 접할 수 있었던 여성문제들이 그 안에서 논의되고 풀어가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일하게 됐다”며 “사단법인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의료계와 법조계에 종사하시는 이사님들과 1년에 5회의 정기 이사회를 가지면서 필요한 승인절차와 사업내용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상담소는 실제 활동가들이 성폭력피해자 상담을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굵직한 성폭력 관련 이슈들을 조언하고 지원하며 여성부 등에서 제기하는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고 여성섹슈얼리티 연구와 양성평등을 지향하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성폭력 방지·상처 치유 위해 60여명 여성학도 모여 창립
피해자 재활·특별법 제정 등 성과 불구 아직 갈길 바뻐


특히 그녀는 “상담소 활동가들의 헌신과 열정에 너무나 감동받았기에 산부인과의사로서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사회 활동 외에 성폭력피해자의 산부인과적 의료지원과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정 강의(산부인과적 의료대응)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60여명의 젊은 여성학도가 모여 창립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의 실상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성차별과 편견으로 얼룩진 성문화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성·시민단체와 연대해 피해자를 지원했으며, 반성폭력 법제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등 남성 중심적 성문화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여왔다.

홍 이사장은 “그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법제도가 잘 정비됐고,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됐으며, 사회 전반의 인식도 많이 개선된 편이다. 상담소가 모은 7만여 건에 이르는 상담 사례는 다양한 연구와 정책 제안의 근거이자 토대가 됐고, 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통합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정부지원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라 항상 금전적 애로사항이 많지만 실제 피해자들의 마음만큼이나 힘들고 고통스럽겠는가. 그 피해자들의 지원과 재활부분은 따로 담당하는 활동가들이 있어 따로 상담을 한 적은 없지만, 전해지는 상처에 대한 마음은 어느 누구나 같을 것이다. 오히려 친부강간으로 인한 10대 임신을 해결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정신적 고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면서 그때 상처를 떠올렸다.

병원과 이곳 활동을 동시에 하고 있는 홍 이사장은 계획적인 일정에 따라 생활하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상처받은 그녀들의 마음을 상담과 지원을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된 작은 미소라도 볼 때면, 그 미소 때문에 보람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고.

친고죄나 양형기준, 그리고 여전한 성차별적인 통념 등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홍 이사장은 “성폭력은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다. 그래서 성폭력에 맞서는 싸움은 수천 년 역사와 맞서는 싸움이다. 이 어려운 싸움에 나선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꿈꾸는 성폭력 제로 사회의 세상을 향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소박하고 진정하게 실천하면서 아름다운 여정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며 이를 위한 사회와 우리 모두의 성찰을 기대해본다.

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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