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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여행기〈하〉
북해도 여행기〈하〉
  • 의사신문
  • 승인 2011.12.2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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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임 중구 동호의원장

맑은 공기·싱그러운 흙내음으로 삶의 에너지 충전

김태임 원장
카메라만 들이대면 선명한 액자사진처럼 멋진 그림이 된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한번 사진 찍기 시작하면 스케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단다. 지난번 제주도 올레길에서는 200미터 가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고 걱정한다. 딸아이가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자유일정인데 한가롭게 가자고, 시간 많이 걸린다 싶으면 차 마시고 수다 떨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안심시킨다.

특이한 이름이 주어진 나무들이 패치워크 로드의 주인공이다. 닛산 자동차 스카이 라인의 광고 배경으로 유명한 `켄과 메리의 나무' 담배 세븐스타의 CF촬영으로 알려진 `세븐스타 나무'가 있다. 이름도 정겨운 `부모 자식 나무'가 있는데 세 그루 나무가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부모가 아이를 가운데 둔 모습과 유사해 붙여진 이름인데, 조금 떨어져 외로이 서 있는 나무는 시어머니 나무라나. 그 밖에도 `철학자의 나무', `크리스마스 나무'도 있다. 어떻게 보면 동화같은 이야기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탁월한 `감성 마케팅'처럼 느껴지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간혹 길에 자전거 하이킹 족이 눈에 띈다. 고저가 있고 양장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길의 아름다운 풍광이 하이킹족을 유혹하나 보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여 일반 저전거로는 힘들고 전동 기어를 갖춘 특수 자전거여야 한다. 비에이역 근처에 자전거를 시간 또는 일당으로 대여해 주는 전문 숍들이 있다.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비에이에는 일본의 저명한 풍경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화랑 `다쿠신간'이 자작나무 숲에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비에이, 후라노의 아름다운 전원 사진을 집중적으로 촬영하여, 이름 없는 평범한 시골 마을 비에이를 일약 북해도의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그의 사진에는 일상의 풍경 속에 우리에게 평안과 고요를 주는 특별함이 있다. 그의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사진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탓인가 보다. 비바우시 소학교의 수채화 같은 뾰죽 종탑의 사진과 쪽 빛 하늘, 진홍색의 사루비아, 샛노란 유채화가 어우러져 있는 황혼의 포스터를 샀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 액자를 만들어 걸어 놓을 생각을 하니 마치 거금 주고 오리지널 사진이라도 구입한 듯이 마음이 뿌듯해진다.

도가치산 풍경
낯선 여행지라 그런지, 빛이 안 들어오도록 커튼을 겹겹으로 쳐야 깊은 잠을 자는 내가 엷은 커튼사이로 살며시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 때문인지, 시계를 보니 아직 6시전 이다. 여행지에서의 금쪽같은 시간을 침대에서 이렇게 꾸물거릴 수는 없지. 옆에서 곤히 자는 딸이 깰세라 살금살금 방을 나와 보니 남편이 자는 방문 밑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조용히 노크하니 독서등을 켜 놓고 책을 읽던 남편이 늦잠꾸러기 마누라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꿈뻑 꿈뻑한다. 우리 산책 가요 하니 얼른 따라 나선다. 사실 “산책 가자, 바람 쐬러 가자”는 주로 우리 남편이 많이 쓰는 말이다. 외국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바쁘게 따라 다녀야 하는 고된 스케쥴로 저녁에 애들은 티브이 보거나 게임하면서 쉬고 싶어 하는데, 남편은 언제 다시 로마의 밤거리 산책하면서 트레비분수를 보겠느냐고 몰고 나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릿 케<&07644>을 사준다고 애들을 달래곤 했다.

보리를 의미하는 팬션 `맥'을 나서 심호흡을 하니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흙 내음이 전신의 세포를 자극하면서 기분이 산뜻하다. 어제는 가끔 자전거 하이킹족이 보였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이라 길이 한갓지다. 넓게 구릉으로 이어지는 대지가 마치 파도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여 이름 지어진 파노라마 로드가 영화처럼 쫙 펼쳐진다. 적당한 간격으로 오르막 내리막길이 이어지면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리듬 있게 길이 흐르는데, 자작나무가 아침 햇살에 곱고 뽀얗게 분 바른 얼굴로 다가선다.


셔터만 누르면 멋진 그림되는 `평안으로 가득찬 풍광'에 감탄
뽀얀 아침햇살 덕분에 일찍 깨어 한가로운 산책과 여유 만끽
카레라이스로 유명한 `유이가도쿠손' 찾아 정겨운 맛에 취해


`산아이노이카 전망공원'에 서니 멀리 구름에 둘러싸인 도카치산이 빙그레 웃으며 아침인사를 보낸다. 작물을 갈아엎은 들조차 검은 갈색으로 윤이 나면서 싱그럽고 건강해 보이는 것이 묘하게 아름답다. 겨울에는 흰 눈이 쌓이면서, 봄에는 각양각색의 화초들로 더욱 볼만 하다니 다음 기회를 기약해 본다. 카메라만 갖다 대면 작품사진이 나올 것 같아 부지런히 셔터를 놀러댄다. 옥수수 밭고랑에 빠져 신발이 흙으로 엉망이 됐지만 마음은 하늘에 닿을 듯하다.

후라노의 농원
후라노에서는 북해도내에서 가장 넓은 라벤더 농원 `팜 토미타'를 찾았다. 차에서 내리니 라벤더 내음이 나를 감싸고 하늘도 라벤더색을 띄우고 대지도 라벤더로 넘쳐있다. 라벤더색의 변종 사루비아가 신기했다. 기념품 가게에 들리니 라벤더 향수, 비누, 문구류, 화장품으로 넘치고 라벤더 향기를 풍기는 곰 인형도 있다. 기념으로 필요한 것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괜찮다던 딸이 푸딩을 먹고 빈 유리 용기를 냅킨으로 곱게 싸 가방에 넣는다. 소스나 잼통으로 쓰면 기념이 되고 좋겠다나. 북해도가 청정 공기 때문인지 유제품의 맛이 좋고 라벤더 아이스크림도 인기다.

여행을 할때 활력을 주는 맛 집을 어찌 빼 놓겠는가? 후라노의 카레라이스와 수제 소시지로 유명한 `유이가도쿠손'(유아독존) 이라는 음식점 답지 않은 상호를 차량 내비에 입력했다. “목적지에 도착 했습니다”라는 안내를 듣고 세 번이나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음식점 사인이 눈에 안 띈다.

내가 용감하게 코너 제화점에 들어가 묻는다. “Famous Curry Rice Restaurant?” 젊은 여점원이 “하이”하며 길 건너 꽃집 바로 옆이란다. 대답하는 속도로 미루어 보아 자주 받는 질문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해 보니 한자 흘림체로 `유아독존'이라는 작고 아담한 있는 듯, 없는 듯한 사인이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허름한 화식 이층집이다. 들어서니 엄청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찬 주방과 좁은 홀에는 테이블이 네 개 정도 옹기종기 놓여있다. 자리가 없어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삐걱거리는 계단에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치면 몸을 비스듬히 옆으로 돌려야 지나갈 수 있다. 외국의 공원 나무 벤치 비슷한 식탁에 등 받침 없는 동그란 의자를 놓아 그야말로 오순도순 정답게 앉는 모양새가 됐다. 낡은 포장 박스의 골판지를 이용한 메뉴가 오히려 정겹다.

음식이 나오는데 건더기가 없는 마치 브라운소스와 유사한 짙은 갈색의 소스를 얹은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거기에 먹음직스러운 통통한 수제 소시지와 샛노란 오믈렛이 곁들어 졌다. 입에 한 술 떠 넣으니 부드럽고 알싸하게 동시에 그윽하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연한 홍차색의 홈 메이드 맥주로 입가심을 하니, 크림처럼 부드럽게 목을 넘어 간다. “단순한 카레라이스가 이런 오묘한 맛을 내는 구나” “환상적이야” “요리 솜씨가 예술이네”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활력을 주고 소진된 에너지를 재충전 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 자체가 여정이지 않은가? 태어남은 기나긴 삶의 출발점이고 죽음은 미지의 세계로의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 건강이 주어지는 한 많이 보고 느끼며 배우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김태임 <중구 동호의원장, 전 이화의대 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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