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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 출신 나 관리요원' 제도를 처음 제안한 - 하용마 
`나환자 출신 나 관리요원' 제도를 처음 제안한 - 하용마 
  • 의사신문
  • 승인 2011.12.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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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한센병 환자들 위해 의학·관리제도 선진화

하용마(河龍馬)
운전(雲田) 하용마(河龍馬)는 1929년 경북 상주군 낙동면 구촌에서 상주농잠 출신 하헌주와 조용희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대구 경북중학교(6년제)를 거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재학시 한국전쟁으로 2년간 참전한 뒤 복학하여 1957년에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졸업반 학생때 소록도를 견학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 곳의 참상을 외면해서 안 된다는 마음이 늘 마음에 서려있었다. 의사가 된 즉시 군복무하는 마음으로 얼마간의 봉사를 위해 바로 국립소록도갱생원(현 국립소록도병원) 의무사를 자원하여 소록도로 들어갔던 것이 평생을 한센병 퇴치와 그 예방사업에 종사하게 됐다. 한국전쟁 후 혼란과 가난 속의 사회에서 무수한 한센병 환자가 발생하자 한센 병 환자들의 복지에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

광복 전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 6000여명이 강제수용법으로 갖은 고충을 당하였으며 일본정부가 이들에게 보상하는 법을 만들게 되었을 때, 2006년부터 이에 대한 일본과의 보상소송과 관련하여 일찍이 소록도에 근무(1957∼1963)한 사람으로서 소록도 수용소 입소확인 자료를 정리하고 한센인으로서의 피해사건에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인권증진 활동에 적극 동참, 향후 환우들의 복지증진과 안정적인 생활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조력하였다. 그 결과 현재까지 생존한 약 500명이 보상을 받게 되었다.

그는 한센병 치료를 위한 답손(dapson=DDS) 적용에 크게 공헌하였다. 1957년 국립 소록도병원에 부임할 당시의 한센병 치료약으로는 다이아손(diasone)과 프로민(promin)이 투여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약들은 워낙 고가에 수급조차 어려웠으며, 보급되어 있는 답손도 독성이 겁이나 쓸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빈혈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투여를 기피하거나 소량 투여하는 방법이 권유되었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나반응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오해하는 등 투여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그러나 고가의 다이아손과 프로민의 대체약품으로 DDS를 투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그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여, DDS투여로 걱정한 부작용 중 빈혈 발생은 양의 감소로 극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DDS 투여로 생기는 피진은 나성 결정성 홍반(ENL, Erythema Nodosum Leprosum)이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자신을 가지게 되면서 DDS의 투여량을 하루 100mg(700mg/주)으로 조절하여 투여함으로써 크게 효과를 본 것이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도 1960년 WHO 한센병 관리 연수, 1965년 중앙 아프리카 나사업에도 참여하여 더 나은 치료와 예방 관리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1963년 우리나라 최초로 나병관리사업을 시작한 전라북도 전주의 국제향토개발처 특수피부진료 소장으로 부임하여 나관리 요원제를 도입하였다. 환자 출신의 나관리 요원을 각 군에 배치하자 환자 발견 성과가 무척 높아졌다. 1966년 경북 월성군에서 전개된 나관리 사업에 적용되어 성과가 확인되자 WHO에 의해 전 세계에 소개되고 우리나라 나병관리 사업에 적극 활용하여 오늘날의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보건사회부 제1나이동진료반장, 국립칠곡병원장을 거쳐 1969년 파티마병원 피부과장 및 의무원장으로 20여 년간 근무하며, 나이동 진료반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소외된 한센병 환자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며 치료는 물론 정착촌 관리 등 한센병의 퇴치에 크게 기여하였다. 1991년부터는 대한나관리협회(현 대한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을 3년여 역임 후 정년퇴임하였다. 그 후 잠시 개원을 하였다가 2001년부터 8년간 대구 가톨릭피부과의원 한센병진료소에서 근무하였다. 2010년 말 대한한센복지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현재 활동 중이다.

서독 구라협회 의학고문, 나화학요법 WHO 한국대표로 나화학요법(MDT) 국제 연구에도 참여, 1979년부터 시작된 아시아지역 한센병 치료의 공동 연구의 결과가 국제 나학회지(1989)에 게재되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한센병 연구의 장래를 밝게 하였다.

그는 1983년 영남대학병원 개원 당시 초대 피부과 주임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4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1984년에는 나학회 이사장으로, 1986년에는 동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평생을 한센인을 위하여 살아온 삶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서독 구라협회의 감사장, 대한나학회의 유준학술상, 한빛복지협회의 한빛상, 대한한센복지협회의 공로패, 백강복지재단 백강상 등 수많은 표창장, 감사장, 공로패,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집필 : 김두희(경북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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