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의학의 창시자 - 김기령
음성의학의 창시자 - 김기령
  • 의사신문
  • 승인 2011.12.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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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의학의 접목 등 이비인후과학 세계화 앞장

김기령(金基鈴)
하당(霞堂) 김기령(金基鈴)은 1926년 충북 괴산에서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타고난 맑고 고운 목소리로 인하여 한때는 위대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1945년 양정중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직후 음악대학에 지원해서 한동안 성악을 공부하다가 다시 세브란스의과대학에 진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였다.

의사가 된 이후에도 의과대학 선배이며 한국인 최초로 이태리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귀국한 당대의 유명한 테너 이인선(李寅善)에게서 성악을 사사했고, 세브란스음악구락부 회장, 한국벨칸토회(한국성악회) 회장, 한국오페라단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 음성학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하였다. 선생의 이 같은 음악적 소양은 선생이 목소리를 다룰 수 있는 이비인후과학을 전공하고, 그 중에서도 후두학을 세부전공으로 택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하였던 음성언어의학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데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

선생의 첫 학술논문이 〈성악적 발성에 대한 의학적 소고〉 (세브란스, 1955) 였음을 볼 때, 그의 의학과 음악의 접목을 위한 관심을 알 수 있다. 1960년 우리나라 이비인후과 의사로서는 최초로 외국 학술지(Arch Otolaryngol)에 연구 논문 〈한국인의 후두암에 대한 고찰〉을 게재한 것을 필두로, 편도적출술 후 음성의 변화(1967), 한국 여성의 성역에 관한 연구(1973), 연축성발성장애에 대한 연구(1985) 등 음성언어의학 전반에 걸친 다양하고 심층적인 연구 업적을 쌓음으로써 우리나라 음성언어의학의 초창기를 독보적으로 이끌었다.

후두신경마비에 있어서 온도감지기를 이용한 페이스메이커 (pacemaker)의 삽입(1987), 자력을 이용한 성대 내전장치에 대한 연구(1989) 등 선생의 획기적이며 창조적인 고안은 해외 학회에서 많은 칭송을 받았다. 특히, 한국 판소리의 가창적 특징에 관한 연구(1986, 1987, 1991)는 우리 고유 음악의 특징을 의학적, 음악적으로 분석한 방대한 것으로서 외국 학자들이 우리의 고유한 소리를 이해하는데 현재까지도 큰 참고가 되고 있다.

1984년에는 후두암으로 후두전적출술을 받아 음성기능을 상실한 환자들의 복지를 도모하기 위한 단체인 후적자단체총연합회를 공동 결성하였고, 대학 내에 후적자의 음성재활을 위한 식도발성교실을 창설하여 그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습득함으로써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으며, 이는 이후 전국 각 대학병원에 음성재활교실이 마련되는 기초가 되었다.

선생은 방송언어가 전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방송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의 순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바, 한국방송공사의 요청에 따라 방송인의 발성법에 대한 저서를 발간(1989)하였으며, 정기적으로 방송국의 강연을 통하여 바른 우리말 교육에 앞장섰다.

1977년부터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음성환자의 목소리를 분석하는 음성검사실을 국내 최초로 개설하여 운용하였으며, 1980년 대한음성언어의학회를 창립하였다.

대외적으로는 1965년 제8차 세계이비인후과학회 총회 때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아시아·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를 결성하였고, 197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이비인후과학회의 실행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우리나라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1983년 아시아·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를 우리나라로 유치했고, 세계이비인후과의학자회(CORLAS)에 한국인 최초로 회원이 되었다.

선생은 해외 5개국 28개 각종 학술단체의 회장과 고문을 역임하였으며, 수많은 국제학술회의의 한국 대표로서 국제친선과 국위선양에 힘씀으로써 한국의학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의학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 증진과 의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85년 국제이비인후과학회연맹 공로상(IFOS Award) 및 1987년 국제이비인후과학회연맹 공로금상(IFOS Golden Award)을 받았다. 그 외에도 1983년 호주 이비인후과학회 공훈메달, 1987년 주한 미8군 의무사령관 감사장 등을 받았으며, 199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의학자로서, 음악인으로서 평생을 살았던 선생은 2011년 지병인 만성신부전으로 소천하였다.

집필 : 최홍식(연세의대 이비인후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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