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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피아노사중주 A 단조
구스타프 말러 피아노사중주 A 단조
  • 의사신문
  • 승인 2011.12.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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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악상 전개와 극적인 조성 독창적

콜리가 축음기에 레코드를 얹자…부드러운 현악기와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 정도는 테디도 알 수 있었다. 프로이센 풍의 음악이었다. “음악이 좋군요. 브람스인가요?” 처크가 물었다. “말러입니다.” 독일 악센트의 억양으로 콜리가 네이링 옆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소설 `살인자들의 섬')〉에서의 한 장면이다. 나치를 좋아하는 독일 정신과 의사가 유태인 작곡가인 말러의 실내악을 즐기는 상황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과거와 현실의 교차 장면에서 그 스산한 분위기는 가히 일품이다. 이때 흘러나오는 불안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말러 작품 중 단 하나 남아있는 실내악 곡, 피아노사중주 A단조이다.

이 곡은 곡 전체를 완성하지 못해 스케치 일부만 남아있다. 이 작품의 초고에는 우편 스탬프가 찍혀 있는데 수신자가 테오도르 래티그 출판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말러는 그 출판사에 악보를 보내 출판 의뢰하였으나 거절당했던 것 같다. 말러는 빈 음악원 1학년말 이 곡으로 교내 경연대회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 부문에서 동시에 1등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의 청소년 시절 작곡한 몇 곡 남아 있지 않은 작품 중 하나로 16세 소년의 작품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선율과 브람스를 연상시키는 진지한 악상이 차분하면서 밀도 높게 전개되는 한편 교묘하게 극적인 구축력이 돋보이는 조성은 매우 독창적이다.

말러는 대규모 교향곡과 관현악가곡 작곡가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빈 음악원 졸업이후 이 두 장르에 집중적으로 창작활동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에 이 장르 외에 그의 작품을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첫 작품이라고 말했던 칸타타 〈탄식의 노래〉 정도이다. 빈 대학 시절 이 칸타타를 작곡해 `베토벤 상'에 도전했지만 입상에는 실패했다. 후일 친구인 나탈리 레히너에게 “만약 이때 베토벤 상을 수상했다면, 작곡에만 전념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 당시 심사위원이 브람스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젊은 시절에는 말러도 다양한 장르에 작곡을 시도하였다. 피아노곡이나 실내악곡은 물론 오페라도 세 작품이나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엄격한 자기 기준에 미숙하다고 생각한 작품은 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악보를 파기하였다.

그는 보헤미아의 칼리슈트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모라비아의 독일인 거주지역인 이글라우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때 이미 수천 곡의 민요와 군가를 외울 정도로 대단한 음악적 소질을 드러냈지만 유년시절 여러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경험으로 살아남았다는 데 대한 심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 유년시절의 기억은 평생 그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6살 때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말러는 피아노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여 15세에 빈 음악원에 입학하게 된다. 음악원시절 피아노를 비롯하여 많은 음악수업을 받게 되고 많은 문학작품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 후 말러는 빈 음악원 졸업 때 빈 대학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많은 강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시 형식미학과 절대음악의 대표적인 음악이론가 한슬릭의 미학강의와 브루크너의 화성학과 대위법강의를 들 수 있었다. 특히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3번은 말러가 동료들과 함께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였는데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 제3번의 총보를 말러에게 선물할 정도로 서로 절친한 관계였다고 한다.

훗날 말러에 매료된 러시아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는 말러의 피아노사중주에 영감을 받아 비슷한 길이의 피아노사중주를 작곡하였다. 말러의 원곡을 연상시키지만 더욱 현대적이고, 슈니트케 특유의 기법으로 말러 곡을 모티브로 한 피아노사중주를 통해 시대는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들을만한 음반: 크리스토퍼 에센바흐(피아노),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원[Ondine, 2006]; 알페 아드리아 앙상블[헝가리톤, 1998]; 빈 베토벤 트리오, 디히트리 크레머(비올라)[Camerata, 2004]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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