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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유전학회 창립 30주년을 회고하면서 〈상〉
대한의학유전학회 창립 30주년을 회고하면서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1.12.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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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호 연세의대 명예교수

1982년, 걸음마 단계 유전의학 발전 위해 한자리 모여

양영호 명예교수
학회 설립 30년을 맞아 회고록을 쓰면서 본 학회가 많은 발전을 한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고 감격스러우며 또한 만감이 교차한다. 회고록을 쓰는데 있어서 여러 면 기술할 수 있지만, 학술학회의 제일 중요한 것은 의학유전학 발전에 기본이 되는 학술적 연구, 기술 발전 과정을 포함한 변천사를 중심으로 회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생각하여 이 부분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모든 국가, 사회, 가정 등이 그러하듯 학회에서도 그 뿌리가 중요하다.

대한유전의학회(구 명칭)의 창설은 1982년 전국의과대학 및 이과계통 대학의 각 분야 교수들이 참여했다. 그 중 인제의대 서순규 교수, 서울의대 문영노 교수(소아과), 최규완 교수(내과), 이희명 교수(비뇨기과), 연세의대 최흥재(내과), 신태선 교수(해부학), 양영호 교수(산부인과), 김길영 교수(소아과), 경희의대 주갑순 교수(산부인과) 등 많은 교수와 학자들이 발기인이 주축 되어 서울의대 강당에서 많은 호응을 받아 창립되었다.

이때 모임의 열기가 대단하여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히 최규완 교수님이 사무처장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초대 회장으로는 서순규 교수님(인제의대), 사무처장으로 최규완 교수님이 임명되었다.

이 당시 유전의학(임상의학 유 전학)의 실 상 은 초보적이었으며 혈액을 이용한 염색체 검사(Cytogenetics)가 거의 전부였고, 이 검사를 시작한 곳은 경희의대 주갑순 교수, 서울의대 최규완 교수, 연세의대 양영호 교수 검사실에서 시작하였다. 모든 분야의 학문과 연구 및 진단 검사의 기술이 어렵지만, 염색체 분석 검사는 배양, 염색체 제작, 분석 등이 아주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으로, 힘들어 인기가 없는 과목이었다. 그중에서도 그 당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실험시약이 거의 없고 특히 기자재와 기구가 초보적인 상태며, 연구 및 검사를 같이할 연구원과 조교가 없어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조직배양, 양수배양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주갑순 교수가 최초로 산전유전진단검 사로 양수검사를 시작하였으며, 양영호 교수, 최규완 교수가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루게 되었다. 주갑순 교수와 신라호텔에서 처음으로 양수검사에 대해 토론하여 어느 정도 규격을 만들었다.

양수검사 시작 당시 국내에서는 상품화된 양수배양액이 없었다. 배양에 필요한 재료가 전부 분말로 되어 있어 이들 분말을 제2차, 3차 증류수와 섞어 pH 조정과 무균 처리를 하여 배양액을 만들어 썼다. 이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

이것이 양수배양 성공의 key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배양에 필수적인 자동 CO2 incubator가 필수인데, 거의 모든 검사실에서 보통 incubator를 이용하므로 양수검사의 성공률이 낮았다.


초보적 혈액 이용 염색체검사 시절 시행착오 거치며 연구·격려
주갑순 교수, 첫 양수검사 성공 후 1994년 공동연구로 지표 마련


◇대한의학유전학회 30주년 기념 공로상 수상 모습(사진 우측이 양영호 명예교수)
이 글을 쓰는 가운데 필자로 하여금 독일 Ulm 의과대학교 임상유전학연구실에서 연구교수(훔볼트 초청)로서 2년간 양수검사, 세포유전학과 초음파 가이드하에 양수 채취법 등을 지도하여 한국 의학유전학 발전에 미력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게 하여준 K.norr 주임교수, 병원장과 HK-Knorr(교수님 부인) 임상유전학 주임 교수님, 두분 은사님께 제자로서 돌보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양수검사결과에 대해 1994년 국내 우수한 10개 대학(경희대 주갑순, 포천중문의대 이숙한, 한양의대 조률희, 계명의대 김종인, 성균관의대 이제호, 일신병원 전성희, 부산의대 최욱한, 연세의대 양영호 등)이 공동 연구를 하여 국내최초로 양수검사의 지표를 만들었다(외국학술대회에 발표되었음). 이런 공동 연구가 양수검사 외 다른 분야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임신 초기 산전유전기법인 융모막융모샘플링(Chorionic Villus Sampling; CVS) 방법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84년 3월에 Sweden, Novelprice 사무총장인 Prof. J. Lindensten과 연세의대와의 임상유전학 강의와 CVS 전수 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잠깐 소개하겠다. 한국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투숙지를 방문하니 현재 서울대학병원 근처의 아리랑 호텔이었다(장급 수준). 스웨덴에 있는 한국인교수가 주선하였다는 말이 있었다.

급히 홍익대학교 앞 서교호텔로 옮겼다. 그 당시 두 명의 교수가 왔는데 평범한 스웨덴 교수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3일 후에 그분들의 실체가 알려지자, 국내 유명하다는 인사들(대학총장, 학장 등 포함)이 매일 초청으로 한 달간 강의시간 이외 Lindensten 교수를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인심이란…?

계약기간 만료가 2∼3일 남았는데 CVS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어 저녁에 직접 투숙한 서교호텔에 찾아가 이미 계약한 CVS에 대한 protocol과 이의 전수를 요구하여, 다음 날 타이프 용지에 간단히 쓴 protocol을 가지고 실험할 융모(villis) 대신 증류수를 가지고 실험을 데몬스트레이숀하였다(별안간 융모를 어디서 구하겠는가). 아마 CVS가 세계적인 Topic이므로 전수하기 싫었는지, 한국이 이를 해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 염색체 검사 방법은 현재 장기배양법과 다르게 villi(융모) 채취 2시간만에 염색체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다. 모든 연구실험에는 반드시 비법이 있는데, 이를 전수받지 못했다. 6∼7개월 동안 수많은 반복연습과 실험 후에 임상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 염색체 핵형을 뽑아내는데 성공하였다(꿈에서도 매일 실험하였다). 이때 그 기분이란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이런 맛에 힘든 연구를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어떻게 신문기자, 방송국 기자들이 알았는지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외래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로 환자를 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MBC, KBS 등의 9시 뉴스시간에 종종 출연하였다.

양영호 <연세의대 명예교수, SCL 학술상임고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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