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 강신호
  • 의사신문
  • 승인 2011.12.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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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현대화·국제경제교류 앞장선 시대의 리더

강신호(姜信浩)
학연이던 지연이던 연결고리라고는 없는데 전생의 인연인지 참으로 긴 세월 선생의 삶을 곁에서 보아왔다. 60년대 말 젊은 기업인들의 국제친선단체인 JCI회원으로 인연을 맺고, 필자가 운영하는 한국전립선관리협회의 명예회장으로서, 글쓰는 의사들의 모임인 수석회의 어른으로 긴 인연을 맺어왔다. 몇 년 전에는 동아제약의 사외이사를 맡아 오랫동안 회사를 경영하는 선생의 탁월한 리더십을 곁에서 볼 수 있었고, 경영을 위한 고민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4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곁에서 지켜본 선생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삶을 살아왔다.

강신호(姜信浩)는 192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952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그 어려운 시기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 명문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선진의학의 학문적 매력에 흠뻑 빠질 무렵, 안타깝게도 동아제약 설립자인 부친의 뜻에 따라 의학자로서의 가장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진흙탕 같은 제조업의 경영인이 되었다.

훗날 선생은 사석에서 그 힘든 독일어를 익히고 독일 의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서 학위까지 받았는데, 의학의 길을 던진다는 게 너무나 억울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1950년대 세끼 먹기도 힘든 시절, 상상할 수도 없는 외화를 들여 독일까지 보내주고 학비를 대주신 아버지의 뜻을 결코 거역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75년 동아제약의 대표이사가 되어 회사의 근대화를 이루고 수성(守成)을 넘어 한국 제일의 제약회사를 만들어 내었다. 전방위적인 경제활동이나 전천후 사회봉사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터라, 오랜 세월 곁에서 본 선생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2003년 11월 1일 아침나절, 선생이 불쑥 필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도망가서 잠도 안 오길래 전립선지(誌)에 낼 원고하나 썼어요”

나는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권 선생! 너무 놀라지 말아요!”

“나 멀쩡하잖아요!”

3일전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가 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에 모든 임원들이 평소 겸손과 긍정의 상징인 선생을 추대했었다. 그런데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연세도 연세인지라 우선 건강부터 걱정이 되었고, 언론, 경제계는 뒤집어졌다. 이런 와중에 선생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하였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왜 잠적 하셨어요?”

“사람마다 그릇이 있거든. 우리 동아소시오그룹의 연 매출이 재벌기업의 분기별 순이익도 못되잖아? 구멍가게 주인이 어떻게 전경련 회장을 맡아요? 그냥 36계 줄행랑을 논거지 뭐!”

선생은 그 막중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가볍게 던진 것이었다. 이게 바로 분수를 알고 입지를 가리는 선생의 참 모습이기도 하였다.

고사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결국 전경련 회장이 되었다. 드디어 의사가 재계의 수장이 되는 역사가 쓰여진 것이다. 그는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대통령을 수행해서 수십 개국을 방문하고 여러 나라와의 경제협력을 이끌어 내었다. 이 나라 경제발전의 대들보 노릇을 한 셈이다.

의사와는 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있다. 4년 전 선생은 일본정부로부터 일본국 최고의 명예인 아사히(旭日) 대훈장을 받았다. 한국의 축하연에서 일본의 재계가 베푼 파티 때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의 아소 다로 외상이 축하인사를 하는데 일본인들한테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우리형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좌중에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콧대 높은 일본 외상이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이무러울 때만 쓰는 `형님'이라는 말을 하다니! 진실로 선생의 국경을 초월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경제교류의 공로로 독일 1등 공로훈장을 받고 서울 북경 경제교류협회를 이끌었다.

강신호는 일찍이 고향에 상주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이 나라 청소년들에게 극기와 애국심을 심어 주기 위해 국토대장정 같은 문화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글 쓰는 의사들의 모임 `수석회'에서 몇 년간 자리를 함께했는데, 촌음이 아까운 일정에 쫓기면서도 늘 참석을 하고 수필집을 발행할 때마다 원고가 늦은 적이 없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몇 권의 수필집을 발행한 선생은 문학을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전인미답의 길만 걸어가는 참으로 전설적인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집필 : 권성원(이화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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