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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창립 96주년 기념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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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11.11.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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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효자·효녀의 나라

박경아 회장
노부모 모시고 병원 찾는 모습 보며 가슴 훈훈

직장이 대학병원이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병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다 보면 내원하는 환자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효자, 효녀구나' 하는 것이다.

연로한 분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실 때면 하나같이 그 자녀분이 차로 모시고 와서 함께 부축하거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외국의 병원도 많이 다녀 보았지만 결코 볼 수없는 광경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어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몸은 쪼그려 들었어도 좋은 차를 운전하고 온 옆의 아들과 딸은 늠름한 체격에 여유 있는 표정들, 그리고 세련된 옷차림까지…. 그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분이 바로 옆의 그 조그만 할머니이니 가히 멋진 훈장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들은 조심스레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인도한다. 때론 그 주위에 손자, 손녀들이 올랑졸랑 따라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 신문 지상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 중 하나가 존속살인이다. 부모님을 살해하는 자식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사를 보면 아니,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이런 패륜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몇 명씩 보도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치밀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다가 냉정히 생각해 보니 사람 사는 세상인데 5000만에 육박하는 인구 중, 정신질환자도 많고 사이코패스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지경이니 그런 사건이 몇 건 쯤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이라고 쿨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번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여자의사회 지역 총회에 참석했을 때, 가정폭력에 관한 발표에서 한 해에 아버지에 의해 살해되는 아이들의 숫자가 250명이라는 보고를 듣고 까무러칠 뻔 했다.

혹시나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여 재차 확인하기까지 하였다. 그들에게는 서래마을 사건이 아주 이상한 사건은 아니었나 보다.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들의 보도태도라고 본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대서특필하고 온갖 세상이 이런 패륜아들로 가득 찬 것처럼 기사를 쓰면, 그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과연 어떠한 마음이 들 것인가! 아마도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어머님의 친구 분 중에 자식이 없는 분이 계신데, 혼자 사시며 다른 것은 별 어려움이 없는데 아파서 병원에 갈 때가 제일 힘들고 괴롭다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차 운전을 부탁해야 하고, 곁에서 부축하여 들어갈 사람도 필요하고…. 누군가를 고용하여 그 때 그 때 해결하신 걸로 알고 있으나 곁에서 보기에 참 딱해 보였고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식을 기를 때, 공부걱정에 입시걱정, 나아가서는 취직걱정, 결혼걱정까지 따지고 보면 자식을 키우면서 걱정 꺼리 투성이었을 테지만, 결국 성인이 되어서 거꾸로 부모님을 모시게 되니 세상만사 이치가 정말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 같고 새삼 조물주의 뜻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마주친 장면 하나가 뇌리에 박혀있다. 중년의 딸이 혼자 연로하신 어머니를 차로 모셔 와서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그 다음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부축해서 가는 것이 불가능했던가보다. 차 트렁크에서 어린이 유모차를 꺼내더니 거기에 어머님을 태우는 것이 아닌가! 그 유모차는 2∼3살 정도의 아이들이 외출할 때 태워가는 크기의 유모차였다. 나이가 드셔서 자그마해진 어머니는 유모차 속에 쏙 들어가 앉으시고 딸은 그 유모차를 밀고 입구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으나 한 편으로 많은 생각이 나게 하며 언젠가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임플란트를 하러 치과병원에 다니실 때 일이다. 모시고 병원 현관에 도착을 한 후, 혼자 내리셔서 지하에 있는 치과까지 가시라기에는 좀 불안하였다. 물론 혼자 잘 다니시기는 하나 병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시고 대리석 바닥을 걸어가시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내년이면 미수가 되시니 아무리 건강하시다고 해도 걸음걸이가 불안정하시니 누가 옆에서 잡아드리기만 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남편과 함께 다닐 때 얼굴이 익었던 수위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발레 파킹을 맡기고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발레 파킹!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된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발레 파킹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세브란스병원에서도 그 후 시작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언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마도 어떠한 문제점으로 인해 폐지시킨 것 같으나, 이러한 서비스야말로 병원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되어 모든 병원에서 실시한다면 그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효자, 효녀에 발레 파킹 시스템까지 겹쳐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병원들이 될 것으로 믿는다.

박경아(한국여자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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