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작전의 영웅, 병리학자 - 현봉학
흥남철수작전의 영웅, 병리학자 - 현봉학
  • 의사신문
  • 승인 2011.11.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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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을 몸소 실천한 임상병리학계의 거목

현봉학(玄鳳學)
현봉학(玄鳳學)은 이름 석자 뒤에 다양한 호칭이 붙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이름 뒤에 일생동안 따라다닌 호칭은 선생, 교수, 박사, 회장, 이사장, 위원장, 편집장, 고문 등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알맞은 호칭은 선생님이다. 그가 학교에서 가르친 일부 학생들의 선생이 아니라 그는 사회의 선생이고 민족의 선생이고 인류의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받은 상의 일부를 잠깐 살펴봐도 현봉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감사가 어떠하였는지 쉽게 엿볼 수 있다. 뮤렌버그보건재단에서 수여하는 윌리암 오가스타 상(1980), 뮤렌버그병원(뉴저지 주립의과대학 교육병원)의 병리학교실을 “현봉학 병리검사실”로 명명(1988), 미국임상병리학회에서 수여하는 Distinguished Service Award Honoring Israel Davidsohn(1992), 서울특별시가 수여하는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상(1995), 연세대학교가 수여하는 제1회 학술대상(1996),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수여하는 Global Korea Award(1996), 한국서재필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2회 서재필 의학상(2005) 등은 그가 받은 많은 상들 중 일부이다.

1923년에 출생한 선생은 1944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에 모교에 강사로 일하면서 임상병리학교실을 창설하였다. 선생은 좀 더 많은 수련과 깊은 연구를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1959년에는 소위 아이비리그 명문대그룹 중의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그 이후 버지니아주립의대, 뉴욕의 콜롬비아대학의대, 뉴저지주립의대, 필라델피아의 토마스 제퍼슨의대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치면서 보여준 그의 헌신적인 연구와 교수 활동이 임상병리학계에서 세계적인 거목으로 인정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자마자 중국을 왕래하면서 중국 내 의학 전반 특히 임상병리분야의 발전을 위해 많은 학문적 도움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1987년부터는 조선족 자치구인 연길에 있는 연변의대에서 명예교수로 거의 20년간 활약했다. 무려 27년간이나 병리과장으로 봉직 해 온 뉴저지 뮐렌버그병원에서는 그 병원의 병리학 교실을 “현봉학 병리검사실”로 명명할 정도로 깊은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뉴저지병리학회에서 10여 년간이나 학술위원과 위원장으로 일하였고, 미국병리학회지 편집위원으로도 16년간이나 활약하였다. 특히 선생의 전문분야인 `재미 한인병리학회' 회장으로도 봉사하였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의 제1호 서양의사이며, 언론인이며, 민족의 선각자이고 애국지사인 서재필의 애국애족 사회봉사 사상을 기리는 `서재필기념재단'이 1976년에 설립되었는데, 이 재단 설립에 선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초대 이사장을 맡아 재단의 발전과 봉사의 활성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설립한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2004년에는 미국 서재필기념재단으로부터 `서재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50년에 대한민국 해병사령관 고문으로도 근무하였고, 미10군단 사령관 민사부 고문으로도 근무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여하였는데, 특히 1951년에 있었던 소위 흥남철수작전에 선생이 주역으로 참여하여 민간인 10만 여명을 구출한 사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5년에 `미·중 한인우호협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2007년까지 봉사했으며, 이를 통해 미주지역의 한인과 중국 조선족의 우호증진 및 문화교류에 온 정성을 쏟아 부었다. 특히 기억 해 두어야 할 사건은 중국 용정지역에 있었으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아져 가고 있던 민족 시인 윤동주의 묘소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어 묘지를 깨끗이 수리하고 묘비도 세우는 등 새롭게 조경도 하여 많은 관광객의 참배 명소로 만든 것도 선생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1993년에는 국제고려학회를 창설하여 남북한의 의학자들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의학자들이 다 한자리에 모여 `한민족 의학학술대회'를 반복 개최함으로써 의학을 통한 한민족 화합의 장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3년 동안이나 지속하기도 하였다.

75세가 되는 1997년부터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의 임상병리학과 초빙교수로 5년간 활발한 교수활동을 계속하였다.

감명을 주는 인간 현봉학, 교육과 연구에 열중하는 의학자 현봉학, 애국애족을 생활화한 애국자 현봉학은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후배와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선생임에 틀림없다.

집필 : 전세일(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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