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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현악육중주 제1번 B플랫장조 작품번호 18
브람스 현악육중주 제1번 B플랫장조 작품번호 18
  • 의사신문
  • 승인 2011.11.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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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외형에 깊은 정조·우아한 꿈 내재

브람스의 현악육중주 제1번은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행복하고 작품의 결실도 많았던 시기의 작품으로 행복한 감정과 젊음, 정열이 넘쳐흐르고 있다. 아울러 신선하고 색채가 풍부하며 음향적인데다가 단순하며 민요풍의 선율이 풍성하다. 일반적 형태의 현악사중주에다 비올라와 첼로를 첨가시킨 이 현악육중주는 그래서 인지 선율이 무척 낭만적인데도 다소 무겁고 두텁게 들린다. 이런 안정감과 두터움이 이 곡을 `밤의 음악'으로 만들고 있다.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1859년 가을 작곡된 전원적이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수작이다. 이 곡의 제2악장은 진지하고 조심스러우면서 수수한 외형에 깊은 정조와 우아한 꿈이 내재되어 있다. 이 곡을 완성한 후 26세의 브람스는 클라라의 생일 선물로 이 제2악장 주제와 변주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클라라에게 보낸다. 그의 편지엔 “제 작품에 대해서 긴 답장을 주십시오. 1860년 9월 13일(클라라 생일)을 위하여, 친구의 인사로서”라고 쓰여 있었다. 주제와 변주. 주제는 그 작품을 결정짓는 본질이지만 시간의 전개에 따라 변하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클라라와의 관계를 철학적 미학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브람스의 눈물'이라 할 수도 있다.

브람스는 현악육중주곡을 두 곡 남기고 있다. 두 곡 모두 바이올린 2, 비올라 2, 첼로 2의 편성이다. 이런 편성의 곡은 실내악 역사 중에서 흔하지 않고 드문 것으로 왜 브람스가 이런 곡을 두 곡 남겼는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브람스는 독일 낭만파 작곡가 중에서도 실내악곡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으며 여러 가지 편성의 실내악곡을 작곡하였다. 그의 음악의 바탕은 실내악에 잘 나타나 있다. 브람스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실내악의 중심을 현악사중주곡에 둔 것과 달리 어느 편성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다양한 편성에 흥미를 나타냈다. 반면 현악사중주곡, 오중주곡이나 육중주곡은 그러한 외면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작곡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브람스의 관현악곡들도 실내악적인 것을 모체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런 점에서도 브람스의 실내악곡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 무시할 수 없으며 독일 실내악 역사에서 하나의 커다란 정점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악기의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표현하려는 매개체로서 구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악상의 취급과 그 구성력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많다. 그는 화려하고 크게 뽐내려는 것을 피하였고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또는 텁텁한 외형에 깊은 정조와 우아한 남성다운 정열을 비축하고자 하였다.

루이 말 감독의 흑백영화 `연인들'에서 파리 외곽 `다종'에서 늘 바쁜 신문사 사장인 남편과 함께 사는 주인공 잔느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나온다.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나 지나가던 남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하는데 남편은 그 보답으로 그 남자에게 하루 묵어가길 권한다. 달빛이 흐르는 그날 밤 우연히 잔느와 남자가 갈대 정원에서 만나게 된다. 잔느가 “밤은 아름다워!”라 하자 남자는 “밤은 여자?”라 답한다. 이 순간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현악육중주 제2악장이 흘러나온다. 마치 카펫을 여러 장 깔아놓은 듯 현악기의 두터운 화음이 어둠처럼 화면에 가득 깔린다.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과 함께 다가온 배반의 시간에 잔느는 그 사랑에 의심을 가지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시 현악육중주가 흐른다. 달빛에 취해 사랑을 맹세했을 때는 밤이었지만 이제는 환한 대낮이다. 음악은 초반엔 달콤했지만 뒤로 갈수록 격렬해진다. 잔느의 마음도 음악처럼 격하게 흔들린다.

■들을만한 음반 :
아이작스턴, 알렉산더 슈나이더(바이올린), 파블로 카잘스, 마드린 포레이(첼로), 밀톤 카팀스, 밀톤 토마스(비올라)[CBS, 1952]; 아마데우스 현악사중주단, 세실 마로노비츠(비올라), 윌람 프리츠(첼로), 아로노비츠(비올라)[DG, 1966]; 알반베르그 사중주단과 아마데우스앙상블멤버[EMI, 1990]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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