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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 한가득…억새들도 산들거리며 반겨”
“가을 햇빛 한가득…억새들도 산들거리며 반겨”
  • 의사신문
  • 승인 2011.11.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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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환 - 서울시의사회산악회 정기산행 `왕방산 산행기'

정익환 원장
가을빛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후미 일요일인 23일 동이 막 튼 이른 아침 서울시의사산악회의 출발 집합 장소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엔 우리 차량 넉 대가 오늘의 산행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들 각자의 진료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주를 보내면서 오늘 만큼은 신선한 공기의 탁 트인 자연의 품을 찾아간다하니 모두의 얼굴은 들 뜬 듯 즐거워보였다.

내가 탄 차는 탑승자 전원이 광진구의사회 회원들로만 구성됐는데 서울시의사회 산하 각 구중에서 참가자가 제일 많은 구이어서 차량 한 대를 할당했고 나는 훈련팀 조장으로 같이 탑승했다.

오늘 산행 장소는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왕방산, 신라시대인지 조선 시대인지 왕이 방문했다는 사연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전 7시5분 주차장을 출발하여 88도로를 거쳐 동부간선을 타고 포천 산자락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 공터에 차량들을 주차해 놓고 모든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날씨는 쾌청, 산자락의 상쾌한 아침공기와 파란 가을 하늘,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산들을 바라보며, 훈련 팀 엄대식 원장의 동작을 따라 준비체조를 하였다. 이어서 박병권 등반 대장의 코스설명으로, 선두를 앞지르지 말 것, 왕방산 정상 갈림길에서 동두천 방향으로 가지말고 깊이울 고개 방향으로 가야 할 것 등의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드디어 오전 8시45분 출발, 출발지 부근에는 넓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새벽에 끼었던 물안개가 걷히면서 호수 한 가득 산봉우리들의 그림자가 그림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가하게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 산행 예정시간은 4시간 반 정도, 그리 긴 산행은 아니지만 점심식사 타이밍을 맞추려면 열심히 대열을 따라 움직여야한다. `깊이울 계곡' 표지석과 다리를 지나 물이 마른 계곡길을 따라 10분정도를 가다가 능선으로 향하는 경사길로 좌회전을 하여 오르막길을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푹신한 낙엽들이 쌓인 길로 침엽수들이 우거진 호젓한 분위기였는데, 길이 불명확하여 선두가 곳곳에 `서의산’ 스티커를 나뭇가지에 붙여 놓아 표시했다.

우리가 간 후에는 스티커들이 한낮 쓰레기일 따름 일지라 대열의 후미 부위를 맡은 나로서는 이 스티커들을 모두 회수하며 올라가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보다 더 늦게 오는 분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잠시 멈칫하였지만 확인해 보니 아무도 없는 듯하다.

나중에 뒷풀이 할 때 알고 보니 이번 산행을 준비하기 위해 박병권 등반대장이 무려 네 번에 걸쳐 꼼꼼히 답사를 했는데 특히 이 오르막길은 이번에 개척한 루트로, 인적이 적은 길이라 선두에 섰던 등반대장도 오늘 다시 오르면서 잠시나마 헷갈려서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하나 하는 난처한 고민을 하며 올라갔는데 다행히도 길이 나왔다고 한다.

능선의 중간 표지물이었던 송전탑이 나타나고 약간 더 가파른 오르막이 20분 정도 계속됐다. 10시20분, 능선길의 시작점에 올라왔다.


8시 30분 도착, 산봉우리 담긴 호수와 강태공들 뒤로한 채 출발
대열 후미 맡아 길안내 스티커 떼어가며 왕방산 정상으로 잰걸음
청명한 하늘과 상쾌한 바람·빨간 단풍 가득한 가을산 매력에 빠져


훈련팀의 조해석 대원이 나침반과 지도를 꺼내 들더니 지도 보는 요령을 설명한다. 나침반이 없을 때는 시계의 시침을 태양 방향에 놓고 시계의 12시 방향과 가운데 1/2에 해당되는 방향이 남쪽이라는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오랜만에 상기시켜 주었다.

옆에 계신 어느 원장님이 건낸 얇은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물어보니 사각거리며 상큼한 맛에 순간 입안이 감동한다.

그러면서 사과 와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문득 엣날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 `개선문'에 나오는 칼바도스라는 사과주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외과의사가 즐겨 먹던 술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데, 근데 실제로 누가 불란서 가서 먹어 봤다는데 맛은 별로였다는 시답쟎은 기억이 난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로 쭉쭉 뻗은 키 큰 소나무 군락들이 자리잡고 있어 은은한 솔잎향이 감돌았고 등산로의 우측 편엔 단풍으로 물들은 국사봉이 코발트블루 하늘을 배경으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더했다.

1시간 정도 능선을 타고 11시40분 드디어 737m 왕방산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도착, 팔방이 확 트인 전망을 즐기며 둘러보니 부근 일대에 억새풀들이 우거져 가을햇빛과 바람에 여자 치맛자락 같이 산들거렸다. 마침 훈련팀 엄대식 대원이 배낭에서 보냉팩에 정성껏 넣어온 시원한 맥주를 꺼내어 나눠 마시니, `캬아∼' 갈증이 싹 가지며, 후련한 맛, 등산의 묘미를 오늘도 즐겨본다

등반대장님이 강조한 갈림길에 표지판이 서 있는데 한쪽은 동두천 방향, 다른 한쪽은 깊이 울 계곡 방향으로 각각 적혀 있었고, 까닥하면 보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150명이 왔는데 한 두명은 잘못해서 엉뚱한 동두천으로 내려간 사람은 없을까 하는 기우를 잠시 하는 와중에, 아니나 다를까 일행 두 분이 이를 지나치고 막 동두천방향으로 내려가려 하는 걸 붙잡아서 올바른 방향을 알려 주었다.

경사진 비탈길을 내려와서는 깊이울 계곡의 돌길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여름엔 계곡물이 가득 차 흘렀을 법한 계곡으로 가을가뭄으로 물이 말라 자갈만 남아 가로질러 건너갔다 왔다 하다 보니 아까 시작했던 다리가 드디어 나왔다.

깊이울 저수지 주변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들이 하산하는 우리를 반긴다.

길가의 짙게 물든 빨간 단풍나무가 아름다워 어느 여선생님 두 분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야말로 오늘 여기는 가을의 절정이다.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정상 말고 또 다른 목표, 오리고기 집.

후미를 맡아 맨 꼴찌로 오후 3시50분경 내려오니 150명 모두 무사히 내려와 자리를 잡고 한잔들 하면서 2011년 가을 서의산의 왕방산 산행을 마감하고들 있었다.

정익환 <강북 밝은성모안과의원장, 서울시의사산악회 훈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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