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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흉부외과 전문의 - 홍필훈
첫 흉부외과 전문의 - 홍필훈
  • 의사신문
  • 승인 2011.11.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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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첫 판막수술…개심수술 분야 발전 주도

홍필훈(洪弼勳)
홍필훈(洪弼勳)은 1942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기독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마친 후 평북 만포에서 2년 동안 개업하였다. 1945년부터 대한민국 해안경비대(해군 전신)중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1947년 서울 교통병원 외과의사로 근무하다가 1949년 큰 뜻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뉴욕주 빙햄톤 시립병원에서 인턴 과정과 외과 레지던트 4년 과정을 마친 후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미개척분야인 흉부외과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텍사스주 달라스시의 베일러 대학병원에서 2년간의 흉부외과 수련을 마치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1956년 귀국하여 세브란스병원 외과학교실 조교수로 부임하여 당시 불모지였던 폐절제수술을 시작하였다. 전쟁 후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던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에서 미국의 China Medical Board 연구비를 수주하여 꼭대기 층에서 폐수술, hypothermia, priming solution 등 개심수술을 하기 위한 동물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1956년에 시설과 장비의 부족 속에서도 승모판 협착증으로 고생하던 22세 남자환자를 폐쇄적 승모판 절개술(closed mitral com- missurotomy)를 성공적으로 치료함으로써 대한 뉴스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명실공히 한국 최초의 심장수술이었다.

1957년에는 활로 4징후의 2세 여아에게 고식적 수술(palliative surgery)인 Potts-Smith 단락술을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며 1962년에는 저온법을 이용한 심방중격결손의 봉합에 성공하여, 우리나라 개심수술 분야의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개심수술을 하기 위한 저온법하의 개심술과 체외순환에 대해 끊임없이 동물을 이용한 기초실험을 한 후, 1963년 드디어 18세 남자환자에게 심방중격결손증을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개심술로 수술에 성공하였다. 이는 철저한 동물실험을 바탕으로 개심수술을 준비하여 첫 수술을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첫 번째 수술 받은 환자는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경북대 이성행 교수와 서울대 이영균 교수와의 경쟁을 통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 개심술의 수기와 방법이 발전하면서 치료하는 질병의 범위를 넓혀갔다. 심실중격결손증, 활로씨 4징후의 완전교정술, 대동맥류파열, 심장판막질환 등이 그 예이다. 이 시기에 심장내과 차홍도 선생의 적극적인 참여로 좌심도자법과 경심방중격도자법을 발전시켜 수술 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게 되어 이는 한층 더 심장외과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성 수축성심낭염 환자의 수술 후 혈역학적 변화, 개심술시 중심정맥압의 변화 등을 연구하여 수술 후 환자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1967년 하와이대학 흉부외과학 교수로 옮긴 후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고 1980년에 다시 귀국한 선생은 불안정성 협심증에 대한 관상동맥우회술의 첫 보고 이후 1983년 23례를 보고하였다. 1980년에 세브란스 외과부장을 맡아 1983년에 성형외과를 성형외과학교실로, 1985년에 흉부외과를 흉부외과학교실로 분리 독립시켜 독자적인 진료, 교육, 연구를 수행케 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제 7대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으로 봉직한 후, 1987년 은퇴하여 하와이에서 거주하였다.

1996년에는 선생의 첫 판막수술을 기념하는 판막수술 40주년 기념식을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거행하였다.

마지막 거주지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여생을 보내다 향년 83세에 폐암으로 2004년 소천하였다.

집필 : 조범구(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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