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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관 스텐트 개발과 나의 삶〈3〉
소화관 스텐트 개발과 나의 삶〈3〉
  • 의사신문
  • 승인 2011.11.1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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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시도 끝에 형상기억합금 `그물망 스텐트' 개발

■형상기억합금과 관련된 `안타까운 기억'

내가 담도 금속 스텐트를 개발하기 전의 일이다. 당시 카이스트에서 핵연료를 연구하는 한 박사가 위암 발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이차적으로 암이 담도에 전이되었으며 수술 후 담도가 좁아져 황달이 생긴 상태에서 내게 의뢰되었다. 그분에게 기존의 가는 직경(7 Fr)의 플라스틱 담도 스텐트를 사용하였는데, 스텐트를 삽입하면 직경이 가늘어서 삽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담즙찌꺼기에 의해 스텐트가 자주 막혔다.

그 박사는 자기가 시술을 받는 동안 내시경이 입에 들어가 있는 데에도 방사선 모니터를 통해 내가 엑스레이 실에서 스텐트를 집어넣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곤 하였는데, 힘들게 삽입한 스텐트를 여러 차례 갈아 넣어야만 하자 어느 날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왜 삽입된 인공관이 그렇게 자주 막히는지요?” “스텐트는 보통 직경이 가늘수록 자주 막히고, 직경이 굵을수록 막히지 않고 오래갑니다. 막히는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삽입된 스텐트 직경의 굵기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고 회진을 갔을 때 그 박사가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교수님 이걸 보십시오” 그는 포크를 들어 앞에 있던 찻잔에 넣고 나자 그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37도 정도 되는 뜨거운 물 때문에 휘어져 있었던 포크 형태 그 이전의 것으로, 형상을 기억해서 변형이 온 것이다.

“교수님, 이게 뭔 줄 압니까? 형상기억합금입니다.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해서 직경이 가는 것을 굵어지는 금속 스텐트가 되게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담도 내에 스텐트가 들어갈 때는 가늘지만 들어가서는 두께가 스스로 자가 팽창되는 그런 스텐트를 만들었으면 좋겠군요”

“그러니깐 볼펜 심이 끼어있는 모양의 용수철처럼 만들어서 굵어지게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되물었다.

“볼펜 심 용수철처럼 만들면 그 사이 벌어진 틈으로 종양이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아주 세밀하게 밀착되거나 용수철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기술적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형상기억합금을 연구하는 분이 있으니 그분과 한 번 상의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이 대화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그림 10] 카이스트에서 처음 계획하였던 형상 기억 합금 스텐트 구조(A)와 이스라엘의 담도용 엔도코일 스텐트(B), 엔도코일 스텐트의 담도암에서 사용한 실례(C, D, E)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변형된 포크와 연관된 그 분과의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나는 카이스트에서 유명한 형상기억합금 분야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플라스틱 스텐트를 이용하여 담관에 삽입하는 일련의 과정과 문제점, 그래서 왜 이런 자가 팽창성 금속 스텐트가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개발을 부탁하였다. 수개월이 지난 뒤, 개발팀의 한 기사 분이 볼펜 심을 하나를 내게 보여줬다. 그것을 물속에 넣으니 상당히 커진 직경을 갖는 볼펜 심 용수철로 변형되었다. 하지만 강도가 약하고 사이사이가 너무 벌어져서 인체에 삽입했을 때 금세 암이 스텐트 벽 사이로 자라 들어와 스텐트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할 것으로 판단되어 틈새를 좀더 촘촘히 하고 보다 힘이 있는 그런 스텐트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안 했지만 그 후로 2년이 지나도록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그림10A].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이스라엘의 스텐트 회사에서 이소파코일, 엔도코일이라고 하는 담도용과 식도용의 자가 팽창성 금속 스텐트를[그림B, C, D, E] 제작하였다. 스프링 식으로 된 형상기억합금 스텐트로 내가 시도했던 것과 모양은 같았지만 제안했던 대로 사이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제작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 스텐트는 몇 년 정도 사용되다가 결국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나 지금은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여러 환자에서 질병 경과와 생존율 향상에 효과가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자가 팽창성 금속 스텐트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잡았던 방법의 하나였다. 이후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많은 자가 팽창성 금속 스텐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특히 스프링 형태가 아닌 그물망 금속 스텐트에 막을 부착한 `그물망 스텐트'가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엠아이텍 스텐트사의 도움으로 내가 만들었던 심하나로 스텐트였고 이 담도 스텐트가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받게 되면서 한국의 스텐트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피막형 그물망 자가팽창형 금속 스텐트는 그 후 2년째부터 미국의 Wilson-Cook사와 Microvasive사에서도 심하나로 스텐트의 형태를 변형하여 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먼저 출시된 심하나로 스텐트가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에 각광 받으면서 시장 점유율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미국의 두 회사와 국내 스텐트 회사들에서도 이를 다른 형태로 변형하여 조금씩 새로운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식도, 위, 십이지장, 대장의 스텐트 시술

[그림11A]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여러 가지 형태의 식도용 플라스틱 배액관
내가 처음으로 시도하고 연구했던 스텐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바로 식도 스텐트였다. 말기 식도암 환자가“정말 내가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물을 삼키고 식사를 원 없이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그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당시에는 식도암으로 음식물이나 물을 삼키지 못할 경우, 개복수술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수술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진행된 경우에는 정맥주사로 수액과 영양만을 공급하여 단지 생명을 연장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남아있는 여생이 비록 짧을지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일시적이더라도 전신상태의 회복과 잠깐이더라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식도 스텐트를 삽입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11B] 암스테르담 메디컬 센터의 의공학실에서 플라스틱 배액관을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고 기념으로 선물을 받아왔다.
이를 계기로 스텐트 삽관술을 배우기 위해 당시 식도암에서 스텐트 삽관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 암스테르담 메디칼센터(AMC)의 Tytgat 교수를 찾아가게 되었고 그때 스텐트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당시에 사용했던 스텐트를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그림 11 A, B]. 그곳에서 나는 영국에서 만든 두 종류의 스텐트 즉, 셀레스톤 스텐트와 매독 플라스틱 스텐트를 구해 서울에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일본, 미국 등에서 나온 제품을 구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외국에서 새로운 스텐트가 나오면 내가 직접 회사나 딜러를 찾아가 몇 개씩 사다 놓고 시술을 하였다.

[그림12] 폐쇄성 식도암 환자에서 플라스틱 배액관과 삽입한 증례 (Celestin-Pulsion stent)
이런 노력의 결실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식도암 환자에서 플라스틱 스텐트를 삽입하고 그 결과를 학회에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악성 식도 위 협착에서 내시경적 식도 삽관술의 경험, 심찬섭 등, 대한내과학회지, 1989;36(4):507∼516)[그림12].

식도암 부위의 스텐트 삽관 시술은 비교적 잘 진행이 되어 많은 시술에 성공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심찬섭(건국대병원 소화기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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