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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의사신문
  • 승인 2011.11.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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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 한국여자의사회 무임소이사

김향 이사
서울의 효자동의 유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오랜 옛날 경복궁 인근에 농사를 짓고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병든 시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낮에는 밭일을 하러 나가고 밤에 돌아와 온 가족을 돌보았다.

하루는 일하러 밭에 가면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갈 수 가 없어 병든 할아버지 옆에 아이를 눕혀 놓고 갔다. 점심 때 아내가 잠시 돌아와 보니 아버님이 이불을 걷어 찬 것이 아이를 덮쳐 질식하여 죽었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부부는 오히려 아버님이 잠에서 깨어나 이 사실을 알고 놀랠까봐 죽은 아이 시신을 안고 뒷마당으로 가서 “너는 죽으면서도 할아버지를 놀래 켰으니 맞아야 한다”며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그 바람에 질식했던 아이가 깨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부터 이 동네 이름을 효자동이라 하였다 한다.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영화가 있었다.

2005년 개봉되었던 닉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 `노트북'의 줄거리는 17세의 첫사랑으로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노인이 된 할머니가 치매에 빠져 기억력을 잃어가고 남편도 못 알아보고 요양병원에 있게 된다. 그 할머니에게 남편 할아버지가 매일 찾아가 젊은 시절 자신과의 추억의 일기를 읽어주며 조금씩 조금씩 기억력을 회복시켜주고 결국 아내의 침상에서 함께 죽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내가 내과 전공의를 시작하였던 1984년도와 지금은 질병의 양상들도 달라졌지만 학문적인 측면 외에도 그때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에는 노인 환자분들이 퇴원을 할 때 집으로 가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새는 연세가 많으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에서 퇴원이 가능하게 되면 가족들이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그리로 모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집에서 모시기에는 불안하고 요양원에 맡기는 것은 불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가족들이 많아졌다. 입원실이 없어서 기다린다고 하던 시절에서 요양병원에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접하게 된다.

치매에 걸릴까 두려워하는 환자들이 많아졌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 자식들에게 큰 소리 치기보다는 자식들의 눈치를 보는 환자들도 많아졌다.

양로원에 봉사를 정기적으로 나가시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가족도 잘 찾아오는 것 같지 않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은 것 같으신데 양로원의 할머니들께서 그렇게 꽃을 좋아하셔서 꽃을 사시고 가꾸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사랑할 대상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지 않은 경험에서 깨달아 가는 것은 병 그 자체보다 외로움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경제적으로 치료에 아무 어려움이 없더라도 외로운 마음은 환자를 더욱 쓸쓸하게 하는 것 같다.

반면에 어려워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환자에게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542만명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의 노인이 홀로 사는 노인단독가구(독거노인·홀몸어르신)가 100만여 가구에 달하였다. 외로운 노인들이 우리사회에 이렇게 많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요양서비스·노인시설과 노인인력 활용 등의 고령화 대책도 사랑으로 운용되지 않는다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반짝 관심이나 더욱 우울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

노인을 사랑하는 사회, 어른을 생각하는 사회, 배려하는 사회, 노인들이 외롭지 않은 사회를 기대한다.

김향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교수, 한국여자의사회 무임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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