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재활사업의 대부 - 문병기
장애인 재활사업의 대부 - 문병기
  • 의사신문
  • 승인 2011.11.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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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활재단 설립 및 정형외과 분리 창설 앞장

문병기(文炳基)
문병기(文炳基)는 1911년에 출생하였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북경연경대학 의예과를 마친 후 1935년에 북경협화의학원에 입학하여 일년을 수료하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1942년에 졸업하고 평양연합기독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한 후 평안북도 만포읍에서 의원을 개원하였다.

광복과 함께 서울여자의과대학 외과와 적십자병원 외과를 거쳐서 1949년에 도미하여 시카고대학 정형외과에서 골병리학을 공부하였고, 일리노이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정형외과 수석 레지던트를 하는 등 4년간 수련을 받았다.

1953년에 귀국하여 연세대학교의과대학 정형외과 과장을 일 년 한 후에 개원을 하였고, 그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였다. 1956년에 정형외과학회를 결성하였는데 초대 부회장을, 1961년부터 6년간은 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특히 소아마비환자를 위한 수술과 재활에 역점을 두었으며, 1976년에는 신체장애자재활협회(현 한국장애인재활협회)를 창설하여 1991년까지 회장을 맡아 장애인재활을 위하여 혼신하였다.

1989년에는 사재를 털어서 재단법인 한국재활재단을 설립하여 1998년까지 이사장으로서 장애인 재활사업을 펼쳤다. 1970년부터 6년 동안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아 이화의대와 병원의 발전을 위하여 일하였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규 정형외과전문의수련을 받고 귀국하여 세브란스병원에 정형외과를 외과에서 분리 창설하였으며, 대한의학협회 이사(1960-62)를 역임하였고, 국제외과학회 정회원 및 한국지회장, 서태평양정형외과 학회장, 수부외과학회 회장, 서태평양정형외과 학회장, 아시안게임 양궁대회 의무담당관, 대한손해보험협회 의료심사위원장 등 국내외적으로 활동을 하였다. 로타리클럽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서울로타리클럽 회장, 로타리3650지구 총재, 국제로타리 아시아지역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말라위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하였다.

부인 손인실여사는 YWCA회장 등 여성계에서 활약하였으며, 아들 문재현은 1972년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도미하여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정형외과 및 재활의학 의사로서 특히 평생 장애인 재활을 위하여 힘쓴 문병기는 1998년에 은퇴하고, 자녀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여생을 보내다가 2006년 말 95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의학박사학위를 1976년에 받았으며, 국민훈장동백장을 1984년에 받았다.

집필 : 유승흠(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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