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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떠난 후
그대 떠난 후
  • 의사신문
  • 승인 2011.11.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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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까지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버릇처럼 연시를 사다 냉장고 냉동실을 가득 채우곤 했습니다. 시장에 가거나 대형 마트에 가거나 아니면 작은 과일가게를 지나다가도 연시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단 몇 개라도 사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어느 봄엔 과일가에에 진열되어 있던 토마토를 연시로 착각하고는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이쯤이면 연시에 대한 탐욕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1990년대 말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6개월간의 입원생활 끝에 퇴원해 동생 집에서 생활을 하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리 넉넉지 못했던 생활에 동생 내외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해 추석을 쇠러 가는 길에 길가 작은 가게에 연시가 참 보기에 좋게 진열되어 있어서 조카들과 부모님 생각을 하며 꽤 많이 샀습니다.

그 때 연시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며 `맛있겠다. 먹어보자.'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에 새겨진 이래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 한쪽은 마비상태였고 말까지 어눌했지만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나 천진난만했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 때까지 어머니께서 연시를 그렇게도 좋아하셨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참 죄스러웠습니다. 다시 과일가게로 가 두 손에 들 수 없을 만큼 많이 사서 쟁여 두었습니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장구령 (張九齡)의 시를 운당 이쾌동(芸堂 李快東) 선생이 썼다.
지금 연시가 지천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연시를 꽤 많이 사다 놓아도 침대에 누워 생활하시는 어머니 드리기 위해 잘 잡수시지도 않고 아끼던 아버님은 오랜 병수발 끝에 3년 전 먼저 떠나셨고 어머니도 지난 해 마지막 날 아버님 곁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9월말 인사동에서 있었던 운당 이쾌동(芸堂 李快東) 선생의 작품전시회에서 한 작품 앞에 서자 가슴 한 구석에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장구령 (張九齡)의 시 한 수였는데 뜻을 짐작하고는 더럭 부모님과 연시가 생각났습니다. 결국 전시회가 끝나고 두 작품을 받았습니다. 전에는 한 번에 써 본 적도 없는 큰 금액을 겁 없이 지불했지만 날이 갈수록 볼 때마다 마음이 흡족합니다.

 自君之出矣 (자군지출의) 그대 떠난 뒤
 不復理殘機 (불복이잔기) 다시는 베를 찌지 않았습니다.
 思君如滿月 (사군여만월) 그대 그리는 마음 보름달인데
 夜夜減淸輝 (야야감청휘) 밤마다 그 맑은 빛은 사위어만 갑니다.

아직도 냉동실에는 꽤 많은 연시가 꽁꽁 언 채 남아 있고 나는 더 이상 냉동실을 채우기 위해 감을 사지 않습니다. 감을 볼 때마다 흡족해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생각나고 그 얇은 껍질을 조심조심 벗겨내고 어머니께 떠 먹여 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 남아 있는 그 모습조차도 희미해지겠지요. 보름달 빛 사위듯.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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