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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 헤르만 부르하베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 헤르만 부르하베
  • 의사신문
  • 승인 2011.11.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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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치료하지 말자”…“정확 문진·관찰 필수”

의사들의 스승이 된 운 좋은 의사 - 헤르만 부르하베(Hermann Boerhaave)

더 이상 못 기다리겠네. 뭘 굽는데 이런 냄새가 나는 거야?

“오늘은 아빠를 위한 엄마의 서비스! 청어구이랍니다.”

음∼, 청어 맛있지. 청어는 대표적인 등푸른 생선이잖아. 오메가3가 많아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아주 착한 물고기야. 요즘은 치매도 예방한다고 그러지.

아 참, 매년 6월쯤 청어 축제가 열리는 나라가 있어. 바로 네덜란드야. 네덜란드는 청어 덕분에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단다.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라는 사람도 `국부론'이란 책에서 살기 좋은 부자 나라로 네덜란드를 꼽았을 정도였지. 글쎄, 한때 온 세계 배의 절반 이상을 네덜란드가 가졌을 때도 있었다고 그러네.

그래, 오늘은 네덜란드로 가보자.

16세기까지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어. 그러던 중 8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독립전쟁을 하게 되지. 이 전쟁의 전환점은 엄청난 화력의 스페인 군대가 라이덴이란 도시를 포위했던 큰 싸움이었어. 스페인 군대의 숫자가 워낙 많은데다 식량마저 떨어져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쯤이었지. 그때 네덜란드 군은 제방을 터뜨려 라이덴을 물바다로 만들어 겨우 승리했어.

그러나 제방이 무너진 도시는 진흙탕에 파묻혀 너무나 참담했어. 라이덴 시민들은 다시 도시를 만들 때 멋진 대학을 하나 세워달라고 요구했어. 그래서 1575년 네덜란드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지. 오늘은 그 라이덴 대학이 배경이야.

윤아, 병원에 가면 참 많은 것을 물어. 뭘 묻지?

“어디가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요.”

그래, 그것에다 어떤 병을 앓았는지를 묻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매일 치료하는 과정 등을 자세히 적지. 요즘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적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18세기에 바로 아픈 역사를 가진 라이덴 대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

이렇게 된 데는 똑똑한 의사들이 모여 아픈 사람의 곁에서 직접 치료하자고 부르짖었기 때문인데, 그 중에 샛별처럼 뛰어난 스타가 등장했으니 바로 헤르만 부르하베였어. 부르하베는 이렇게 한 마디 말했어.

“더 이상 대충대충 치료하지 말자!”

부르하베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독일의 의사 호프만(Fridrich Hoffmann)을 가볍게 눌려버렸지.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학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재미있는 강의 덕분이었다네.


체계적인 진찰법 정립·효과적 강의로 유럽의사들의 스승돼
내과학 뿐 아니라 식물학에도 명성 떨쳐 라이덴대 학장 역임



부르하베는 남자용 병상 여섯 개, 여자용 병상 여섯 개를 두었어. 바로 아픈 사람들 앞에서 어디가 아픈지 묻고, 어떻게 치료할 지를 체온계를 꼽고, 직접 현미경을 보면서 결정했어. 부르하베의 강의가 아주 재미있다고 소문나자 수많은 학생들이 유럽 모퉁이 나라 네덜란드로 몰려들어, 요즘 아이돌 공연 때처럼 방방곡곡의 학생들이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그런데 부르하베가 얼마나 유명했던지, 줄선 학생의 절반이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고 하네. 결국에는 전체 유럽의 의사 중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제자가 절반을 넘어 `모든 유럽 의사의 스승'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돼.

부르하베의 강의가 시작되면 하나라도 놓칠까 봐 학생들의 눈이 또랑또랑했다고 해. 병상을 돌 때는 학생들이 부르하베의 주변을 구름처럼 둘러쌌는데, 부르하베의 첫 마디는 항상 이렇게 시작되었어.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아빠!! 어떻게 하는지 잘 봐?”

하하하. 부르하베는 그 자리에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말해주곤 했어. 그러다 보면 병상에 누운 사람들도 자신의 병에 대해 웬만한 것은 알게 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네. 덕분에 부르하베의 병원은 언제나 환자들로 가득했어. 그런데 참∼, 병이란 아픈 사람이 너무 많이 알아도 곤란할 때도 있는데 말이야.

하여튼 부르하베는 잠시도 한 눈을 팔지 못하게 만드는 현란한 말솜씨로 강의를 하다가도, 지루하지 않게 장난스런 행동으로 한 번 더 서비스하곤 했다네.

당시 화장실이 따로 없어 오줌을 누는 항아리인 요강을 병상 끝에 놓아두곤 했어. 부르하베는 빈 요강을 보면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일부러 걸려 넘어지며 온 병실에 한바탕 폭소가 터지게 만들곤 했지. 분위기가 훈훈해지면 툴툴 털고 일어나 웃으며 언제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자, 하나도 빠짐없이 적었지?”

간혹 부르하베의 병원에선 불평 섞인 큰 소리가 들렸어. 부르하베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순서대로 기다리도록 규칙을 정해놓을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아무리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르하베의 얼굴을 보려면 한참 기다려야 되었기 때문이었지.

간혹 사람들은 부르하베가 좋은 시기에 운 좋게 태어나 실력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나 부르하베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연구했다고 그래.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은 같은 금속으로 금을 만들고자 했어. 이런 사람들을 연금술사라고 불렀단다. 하루는 부르하베가 생각했지.

“내가 수은으로 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볼까?”

한 마디 한 후에 부르하베는 무려 수은을 열다섯 해 동안 오백 번이 넘게 끈질기게 열로 증류시켜 결국 연금술사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냈어. 이토록 오랜 시간의 노력과 인내가 그를 최고의 의사로 만들지 않았을까?

부르하베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다 의사가 되었어. 졸업 후 라이덴으로 돌아와 내과학과 식물학을 강의하게 되었다네. 당시에는 의과대학에 꼭 있어야 하는 시설이 네 가지 있었어. 외래진료실, 도서관, 해부실습실, 식물원이었는데, 그가 식물학 교수를 맡자마자 이듬 해에는 라이덴대학 식물원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부르하베는 열심히 일했다고 하네.

부르하베는 내과학이나 식물학 강의를 하다 결국 화학 교수까지 겸하였지. 나중에 라이덴대학 학장까지 지낸 부르하베는 통풍이라는 관절병에 걸려 의사를 그만둘 때까지 라이덴을 사랑해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

부르하베가 얼마나 유명하였냐구?

“아빠!!! 정말 궁금해요.”

`유럽의 의사인 부르하베에게'라고 겉봉에 쓰인 편지가 중국으로부터 네덜란드까지 배달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내려와.

요즘에도 부르하베의 이름은 의과대학 교과서에 나와. 심하게 구토를 하다 그만 식도의 아래쪽이 터진, 아주 위험한 병을 부르하베가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부르하베증후군'이라고 하는데, 흉부외과 의사인 아빠가 죽어가는 사람을 수술해 `짠∼'하며 살리는 병이지.

김응수 (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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